오늘 지인으로부터 카카오톡에서 받은 "아내 아닌 여인과 한 번의 데이트"라는 옮긴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다. 이글에 있는 것처럼 비록 아들은 아니지만 아버지께서는 어릴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라도 돌아가시기 전에 단 둘이서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 모시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따라 더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리웠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늘 슬하에 많은 아들과 딸을 두시고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셔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는데, 그 생각을 하니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현실 앞에 돌아가신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고 가슴이 아프다. 요즈음 들어 주위에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자주 듣는 말 중에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잘 모시라."라는 말이 더 실감 나게 느끼진 하루였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은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집으로 달려가곤 한다. 첫째를 낳아 키울 때도 둘째를 낳아 귀국했을 때도 어머니께서 오셔서 뒷바라지를 해주셨던 일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일흔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으니 무상하다.
어릴 때 부모님은 항상 함께 사실 줄 알았었는데, 세월이 흘러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이제 자식들과도 얼마나 함께 살 수 있을까 하는 나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부모는 참 외롭고 주기만 하는 자리인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느낀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 더 못해주지나 않는지 걱정하고 살피는 것을 보면 부모는 운명인 것 같다. 부모는 살아있는 내내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자식들 걱정과 자식들 잘 되기만을 빌고 바라기만 한다. 자식들이 이 사실을 알 때는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슬픔이고 아픔이다.
하루 종일 부모님, 특히 어머니 생각으로 지낸 주말이었다. 시간을 내서라도 애들 아빠와 함께 고향의 선산에 들러 부모님 산소에 성묘도 하고 고향집도 들렀다 와야 하겠다. 시간이 되면 첫째도 함께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 오늘부터 기온이 평년으로 올라서 한낮에는 영상 섭씨 10도 이상이 되었으니 본격적인 봄으로 접어든 것 같다. 2월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 봄 채비도 서서히 해나가고 텃밭에도 나가 냉이와 달래도 채취해 와서 봄나물로 식탁을 향기롭게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다시 한번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두 손 모아 극락왕생을 빌어본다.
------------------------------------------------
[ 아내 아닌 여인과 한 번의 데이트 ]
얼마 전에 나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만나러 갔다.
실은 내 아내의 권유였지만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잖아요.
인생은 짧아요.
당신은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요."
아내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나 나의 말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녀도 사랑하잖아요."
내 아내가 만나라고 한 다른 여자는 실은 내 어머니이다.
미망인이 되신 지 벌써 몇 년
일과 애들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식사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혹시 나쁜 일은 아니지?"
알다시피
어머니의 세대는 저녁 7시가 지나서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나쁜 소식일 거라고 믿는 세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