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에 알록달록 핀 소국(小菊)
오늘은 오랜만에 겨울답게 매섭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을 줄 알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매서운 겨울바람에 쫓겨 집으로 다시 돌아올 정도로 차가웠다. 지난해 11월 7일 가까운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에 들렀다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소국(꽃송이가 작은 국화)를 보고 정신없이 담은 것들을 올린다. 사군자 중의 으뜸이라고 하는 매화(梅花)는 한 평생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여 한겨울을 이기고 이른 봄에 피는 꽃으로 유명하지만, 국화(菊花)는 매화 못지않게 그윽한 향기와 아름다운 자태로 사랑을 받는 꽃이다. 매화가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는 꿋꿋이 이기고 봄을 알리면 피는 꽃이라면, 국화는 매서운 추위가 시작되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곱게 피어나 얼어붙은 가슴에 숱한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키는 꽃이다.
국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아닐까 한다. 특히 '누님 같이 생긴 꽃'이라는 대목에서는 수수하면서도 정 많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국화가 피기까지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봄에는 거의 눈에 띄지도 않다가 여름이 되면 새순이 자라나고 서서히 꽃대를 키워나가다 가을에 접어들면 꽃봉오리가 맺히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노란색, 분홍색, 흰색, 붉은색, 자주색, 주황색 등의 꽃을 피운다. 꽃이 피고 나서 한 달 이상의 늦가을과 초겨울을 즐기다가 기온이 급강하하면 차츰 시들어가서 한겨울이 되면 말라버린다. 하루하루 국화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꿈만 같지만 삽시간에 시들어버린 모습을 바라보면 인생의 허망함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쓸쓸하다.
기억을 더듬으며 서정주 시인의 유명한 시인 '국화 옆에서'를 읆어본다(옮겨본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정말 열심히 외워 서로 외우기 시합도 했고, 국화를 볼 때는 자랑삼아 읊기도 했었다. 졸업한 뒤로도 가끔 국화를 보면 떠올랐고, 가정을 꾸리고 난 뒤로 국화 전시회를 가서 만나도 이 시가 떠오르곤 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보통 시(詩)를 두고 국어 선생님이 의미를 설명하면 그대로 암기하여 시험 대비를 했었는데, 시라는 것은 읽는 사람(독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 시를 읽을 때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인들이 시를 창작할 때, 그 시에 대한 의미까지 적어두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독자에게 의미를 맡기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아대학교 승학 캠퍼스 운동장과 도서관 사이 얼마 되지 않는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있는 국화들을 담으면서 다양한 색상의 아름다움과 은은히 퍼지는 향기에 흠뻑 취하는 것 같았다. 올해도 분명히 똑같이 피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어쩌다 가서 아름다움 자태와 그윽한 향기를 느끼지 못해 아쉽지만, 지난해 담은 국화로 위안을 삼는다. 내일이라도 시간을 내서라도 한 번 다녀와야 될 것 같다. 오늘과 같은 추위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국화가 아직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활짝 웃으면 맞아주지 않았까 한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지난해까지 누렸던 아름다운 자연의 이야기들을 놓치고 지나가는 것 같다. 모두가 소망하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정상적인 일상을 누리기를 기도해 본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오늘(11월 29일) 오후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에 들러 다시 국화를 보고 왔다. 작년에는 11월 초여서 국화가 아주 아름답게 피어 있었는데, 올해는 조금 늦게 가는 바람에 작년보다는 꽃송이들이 적었고 벌써 시든 꽃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국화는 그대로 국화였고, 조금 양지바른 곳에 핀 국화는 작년과 다를 바가 없이 곱게 단장을 하고 반가이 맞아주었다. 언제 어디서 봐서 낯설지 않고 정이 가는 국화라서 그런지 1년 만에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매서웠는데도 꿋꿋하게 피어나 알록달록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며 지나간 가을의 추억을 잊지 않고 초겨울까지 그윽한 향기를 지피고 있어 반가웠다. 내년에 다시 보자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오늘 담은 몇 장을 추가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