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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오늘을 위해/살아가는 이야기

2021년 새해를 맞으며

by 감사화 202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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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축년 흰 소띠 해의 첫날을 맞았다. 늘 그랬지만 오늘이라는 하루는 살아가는 생에 있어 언제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날이다. 특히 새해의 첫날은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모두들 큰 꿈과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날이다. 지난 2020년 경자년이 코로나 19 사태로 유독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에 새해에 거는 기대는 어느 해보다 크고 무겁다. 새해에는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안전하고 무탈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또한 세상이 평안하고 아름다우며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나아가 거짓과 위선, 막말과 억지, 궤변과 가짜, 반칙과 조작 등으로 세상이 어지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돌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새해 아침에 서둘러 오전 9시 반쯤 집을 나서 매년 새해 첫날 다녀오는 양산 통도사로 향했다. 새해 벽두(?)라서 그런지 도로에 차량들은 그리 많아 않아 소통이 원활했다. 오늘은 통도사가 새해 첫날이라서 입장이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이 거의 차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가족 참배객들이 두툼한 옷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오가고 있었으며, 벌써 달력을 받아 나오는 참배객들도 있었다. 오전 9시부터 10시 30분까지는 아침 예불 시간이라도 입장이 통제되는 전각들도 있었다. 천왕문을 지나 가람각부터 극락보전, 약사전, 관음전, 대명광전, 대웅전, 신령각, 삼성각 등을 차례대로 돌면서 참배를 하면서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였다.

<주차장에서 건너가는 구름다리가 통제되어 멀리서 본 일주문>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금강계단 뒷편의 소나무숲과 맑은 하늘>

참배객들이 많이 들리는 극락보전, 관음전, 대명광전, 대웅전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참배객들이 이어졌고, 대웅전에는 스님과 보살들이 인원수를 통제하면서 안내를 해도 그리 쉽지 않은 듯하였다. 출입이 통제된 금강계단(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많은 신도들이 경전을 읽거나 참배를 하고 있어 분위기가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응진전 바로 옆의 탑광실 쪽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아직도 익은 감들이 언 상태로 그대로 매달려 있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더 붉게 보였다. 대부분의 참배객들이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치고 있었는데, 수확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을 것 같고, 왜 그대로 둔 것일까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있는 그대로 두어 순리의 법을 가르치는 것일까?

<산신각 쪽에서 본 금강계단>
<멀리 눈이 내린 영축산과 탑광실의 홍시가 매달린 감나무>
<꽁꽁 얼어버린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확대시켜 본 겨울 홍시>
<대방광전 위에서 새해를 밝히고 있는 태양>

시간이 지날수록 참배객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다시 주차장으로 되돌아 나오는데, 경내를 빠져나가는 참배객들보다는 들어오는 숫자가 훨씬 많았다. 다시 차를 타고 이번에는 칠성 탱화로 유명한 비로암으로 향했다. 이제 주자창도 만원이라서 주차할만한 곳에는 차들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많은 차들이 입장한 듯했다. 비로암에서는 먼저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는 산정약수(山精藥水) 비문 옆의 약수를 길렀다. 그리고는 북극전(北極殿)에 올라 108배를 올리면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은 물론 나라와 세상이 평화롭고 안전하기를 기도했다. 지난해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보고 싶은 얼굴들을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다.

늘 한없이 베풀어지고 있는 자연의 혜택들과 저절로 주어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가로막히는 순간 겪었던 참담함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하루빨리 코로나 19가 종식이 되고 다시는 이런 역병 창궐이 생기지 않도록 각자의 의식과 생활 방식도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보통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것은 미리 대비를 하고 예방을 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꼭 탈이 나고 문제가 생겨 어려움을 겪어야만 후회를 하면서 대책을 세운다는 야단이라는 점이고, 큰 탈없이 그런 순간을 넘기고 나면 이내 잊어버리고 이전과 같이 지내다가 다시 더 큰 위험한 순간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모두 칼날 위에 서 있는 듯 위험천만한데도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올해는 흰 소띠 해라고 하니 상서로운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또한 소는 우직한 점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가정은 물론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우직하게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소가 집의 농사일에 큰 역할을 했지 때문에 가족처럼 대했던 기억이 난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표본으로 소처럼 일한다는 말도 있듯이 올해도 부지런하게 그리고 근검절약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할까 한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요란스럽다고 해도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뚜벅뚜벅 꾸준하게 자신만의 길을 닦아 나아가는 나날을 만들까 한다. 사람들이 위대한 것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나 이룰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올해도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힘차게 나아가려 한다. 

다음은 소[牛]와 관련한 내용을 참고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있는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옮긴다.

<소[牛]에 대하여>

(1) 소의 의미와 특징

소의 학명은 Bostaurus L.이다. 소의 명칭은 우리말로는 수소·암소·송아지 등으로 불리지만 한자어로는 더욱 복잡하고 상세하다. 즉 수소를 특(特), 암소를 고(牯)라고 하며 송아지도 갓난 것은 독(犢), 두 살짜리는 시(牛+市), 세 살짜리는 삼(犙), 네살짜리는 사(㸻)라 한다. 또 한 가지 색으로 된 것은 전(牷)이라 한다.

12지 중의 소는 방향으로는 동북, 시간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것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 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는 발육상태에 따라서 조숙종(早熟種)·중숙종(中熟種)·만숙종(晩熟種) 등으로 나누어져 체격과 생태에 차이가 있다. 소는 대체로 조숙종은 생후 14∼18개월, 만숙종은 18∼24개월이면 번식에 이용할 수 있다. 약 280∼285일간의 임신기간을 경과하여 출산하면 포유기간 3∼5개월을 거친 뒤 사료를 먹기 시작한다.

소의 치아는 문치(門齒)·우치(隅齒)·전구치(前臼齒)는 유치(乳齒)로 나타났다가 나중에 영구치가 나오고, 후구치(後臼齒)는 처음부터 영구치로 나타난다. 유치의 교환도 소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중숙종에서는 만 4세까지 유치의 교환상태로 연령을 정확히 감정할 수 있다. 후구치가 완전히 다 나는 시기는 중숙종의 경우 26개월 후가 된다.

건강한 소의 호흡 수는 환경과 몸의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수소는 1분에 20∼30회 정도이며, 맥박은 수소 40∼56회, 암소 70∼90회이고, 체온은 평균 38.5℃이다.

한우는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나라 고유의 역용종으로, 수천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독특한 품종이다. 성질은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하면서도 영리하다. 털색은 적갈색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가 있고, 체격은 북부지방의 것은 크고 남부지방의 것은 작은 편이다.

젖은 겨우 송아지를 키울 정도로 나오고 유기는 3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쇠고기를 식용으로 하던 풍습이 있어 쇠고기의 맛은 좋으나, 한우의 주목적이 농경용·태용(駄用)·만용(輓用)이었으므로 그 방면으로 발달, 개량시킨 결과 고기의 생산량은 적다. 그리고 아무것이나 잘 먹고, 특히 산과(産科) 부문의 질병이 적은 특징이 있다.

(2) 소에 관한 우리 민족의 개념과 일화 등

[소에 관한 우리 민족의 관념]

소는 생구(生口)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말에서 식구는 가족을 뜻하고 생구는 한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말하는데, 소를 생구라 함은 사람대접을 할 만큼 소를 존중하였다는 뜻이다.

이렇게 소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소가 힘드는 일을 도와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며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소값이 비싸서 재산으로서도 큰 구실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월 들어 첫번째 맞은 축일(丑日)을 소날이라 하여, 이 날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소를 잘 먹였다.

그리고 도마질이나 방아질을 하지 않고 쇠붙이연장을 다루지도 않았다. 도마질을 하지 않는 것은 쇠고기로 요리를 할 때에는 으례 도마에 놓고 썰어야 하는데 소의 명절날이므로 이와 같은 잔인한 짓을 삼간다는 뜻이다.

방아는 연자방아를 의미하는데, 연자방아는 소가 멍에에 매고 돌리는 것이므로 자연히 소에 일을 시키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방아질을 하지 않는 것은 연자방아를 찧지 않던 풍속이 그 밖의 방아에까지 번진 것이다. 쇠붙이연장을 다루지 않는 것도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풍속이다.

한편, 우리 민속에는 기형이나 이상한 털색의 새끼가 태어나면 음양오행과 관련시켜 길흉을 예측하는 습속이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84년 고타군주가 신라 사파왕에게 청우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청우는 털색이 검은 소로 추정되는데, 중국 문헌에 의하면 늙은 소나무의 정이 청우로 된다고 한다. 따라서 청우는 선인·도인·성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소에 관한 일화·전설]

우리는 소를 한 집안의 가족처럼 여겼기에 소를 인격화한 일화가 많다. 인의 사상에 따라 소를 인격화한 이야기로는 황희(黃喜)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황희가 길을 가다가 두 마리의 소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묻기를 “어느 소가 밭을 더 잘 가느냐?” 하니 농부는 황희 옆으로 다가와서 귓속말로 “이쪽 소가 더 잘 갑니다”라고 하였다. 황희가 이상히 여겨 “어찌하여 그것을 귓속말로 대답하느냐?”고 물으니, 농부는 “비록 미물일지라도 그 마음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니 한 쪽이 이것을 질투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는 것이다.

또, 김시습(金時習)이 소의 꼴 먹는 것과 불자(佛子)가 설법을 듣는 것을 비교한 것 등도 있다. 또 소의 우직하고 인내력 있고 충직한 성품을 나타내는 전설이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에는 권씨라는 농부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소의 무덤과 관련된 전설이 있고, 개성에는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전설이 전해지는 우답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나경의 습속]

우리나라의 관동·관북지방에는 예로부터 나경(裸耕)의 습속이 있었다. 나경이라 함은 정월 보름날 숫총각으로 성기(性器) 큰 남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되어 목우(木牛)나 토우(土牛)라 하는 의우(義牛)를 몰고 밭을 갈며 풍년을 비는 민속이었다.

땅은 풍요의 여신이요 쟁기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산력을 지닌 대지 위에 남자의 성기를 노출시킴은 풍성한 수확을 비는 뜻이었다. 이와 같은 풍습이 관동지방에만 있고 남쪽에 없었다는 것은 토질이 척박하여 곡식의 결실이 잘 되지 않는 데서 풍년을 비는 마음이 절실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소싸움]

두 소를 마주세워 싸우게 하고 이를 보며 즐기는 놀이로서, 보통 추석날에 벌인다. 싸움날 아침이 되면 소 주인은 소를 깨끗이 씻어준 뒤에 여러 가지 천으로 꼰 고삐를 메우고, 소머리에는 각색의 아름다운 헝겊으로 장식하며 목에 큰 방울을 달아준다.

순서에 따라 도감이 호명하면 주인이 소를 끌고 들어온다. 이때 소와 소 사이에는 포장을 쳐서 가려두어 미리 싸우지 않도록 한다. 승패는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거나 밀리는 소가 패하는 것으로 한다. 주로 경상남도 지방에서 성행하였으며, 강원도·황해도·경기도의 일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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