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벌써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秋分)을 맞았다. 어제까지 추석 연휴여서 이번 주는 삽시간에 지나가는 것 같다. 서울에 사는 둘째에게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마련한 음식을 당일 택배로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바리바리 챙겨서 우체국 택배로 보내고 나서는 곧바로 텃밭으로 가서 무와 배추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무와 배추를 보면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는 얼마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자성(自省)하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썩 다르지 않게 여겨지는 것을 보면 노력이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다.
무는 파종을 하여 자라는 속도가 조금 느려 보이고, 배추는 올해 처음으로 농협에서 모종을 배부받아 이식을 해서 그런지 예년과 다르게 훌쩍 자라 있다. 추석 전날 아침에 다녀왔을 때와 사흘이 지난 오늘 비교를 해도 완연하게 다른 모습으로 쑥쑥 자라 있어 놀랐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러는 텃밭인데 오늘은 다른 볼 일도 있어 주중에 찾아와 보니 무와 배추가 이렇게까지 많이 자라 있을 줄은 몰랐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게 돌아가며 혼란스러워도 만물은 계절의 시각에 맞추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 자신들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이롭게 보이기에 많은 점을 배우게 된다.
한낮의 텃밭은 평화 그 자체였다. 농작물은 농작물들대로 잡초는 잡초들대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몸짓이 눈부시고 조화롭기 그지없다. 지금은 무와 배추가 가장 눈에 강하게 들어오는 것은 다른 농작물보다 무와 배추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김장 김치와 연관이 있다. 무도 무이지만 배추는 김장 김치의 핵심이며 한겨울은 물론 봄까지 식탁의 주된 메뉴이며, 김장 김치가 맛이 있으면 다른 반찬들은 대충 장만을 해도 무리 없이 한 끼 식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년보다 고추 농사도 잘 되어 8근은 자급할 수 있을 정도여서 배추와 무만 잘 자라주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무와 배추가 무럭무럭 잘 자랄수록 병충해들이 극성을 부린다는 점이다. 무는 그래도 해코지를 하는 벌레들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배추는 올 때마다 벌레들을 잡아주지만 잎들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있어 눈에 불을 켜고 잎을 갉아먹는 벌레들을 잡아주지만 잡고 나서 돌아서면 다시 벌레들이 보인다. 그래서 농약이라도 칠까라는 강한 유혹을 받지만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도 없어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작년에 담아둔 소주에 산초와 계피를 우린 액을 챙겨 왔다. 그 액을 희석하여 무와 배추에 충분히 뿌려주었다. 산초와 계피를 우린 소주는 진딧물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매실 재배를 하면서 경험으로 알아 매년 무와 배추에 뿌려주고 있는데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추분(秋分)이 가까워지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내려가서 모기들도 차츰 사라지고 지내기에 아주 좋은 때가 된 것 같다. 코로나 19로 나들이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가끔은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조용한 곳을 찾아 길을 나서는 것도 좋은 힐링이 아닐까 한다. 텃밭에는 분꽃, 호박꽃, 파란 나팔꽃, 채송화, 고들빼기꽃들이 제각기 시간에 맞추어 활짝 피어나 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다. 주변 논에는 고개 숙인 벼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면 누렇게 영글고 있어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편안해진다. 자연은 말없는 스승이고 편안한 안식처이다. 자주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도 좋은 계절이 가을이다.
다음은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나오는 추분(秋分)에 관한 내용이다.
추분(秋分)은 백로(白露)와 한로(寒露)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로, 양력 9월 23일 무렵이며, 음력으로는 대개 8월에 든다. 이날 추분점(秋分點)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황경 180도의 추분점을 통과할 때를 말한다.
추분점은 황도와 적도의 교차점 안에 태양이 적도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가로지르는 점을 말한다. 곧 태양이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 적경(赤經), 황경(黃經)이 모두 180도가 되고 적위(赤緯)와 황위(黃緯)가 모두 0도가 된다.
추분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므로 이날을 계절의 분기점으로 의식한다. 곧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추분과 춘분은 모두 밤낮의 길이가 같은 시기지만 기온을 비교해보면 추분이 약 10도 정도가 높다. 이는 여름의 더위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추분에는 벼락이 사라지고 벌레는 땅속으로 숨고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 또 태풍이 부는 때이기도 하다.
추분을 즈음하여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를 따고 고추도 따서 말리며 그 밖에도 잡다한 가을걷이 일이 있다. 호박고지, 박고지, 깻잎, 고구마순도 이맘때 거두고 산채를 말려 묵나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추분에는 국가에서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노인성제(老人星祭)를 지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때부터 시행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소사(小祀)로 사전(祀典)에 등재되었다.
추분에 부는 바람을 보고 이듬해 농사를 점치는 풍속이 있다. 이날 건조한 바람이 불면 다음해 대풍이 든다고 생각한다. 만약 추분이 사일(社日) 앞에 있으면 쌀이 귀하고 뒤에 있으면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건방이나 손방에서 불어오면 다음해에 큰 바람이 있고 감방에서 불어오면 겨울이 몹시 춥다고 생각한다. 또 작은 비가 내리면 길하고 날이 개면 흉년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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