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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오늘을 위해/살아가는 이야기

작은설이라고 하는 동지(冬至)

by 감사화 202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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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절기의 22 번째 절기인 동지(冬至)로, 보통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로 알고 있으며, 작은설(亞歲), 호랑이장가가는날, 수세(首歲), 원정동지(元正冬至) 등으로 불리는 날이다. 어릴 때는 동지(冬至)가 되면, 집집마다 동지 팥죽을 끓여 먹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고, 작은설이라는 말은 듣지도 못했던 것 같다. 쌀밥 구경을 하기가 어려웠던 그 당시, 쌀로 만든 쫄깃쫄깃한 새알심(옹심)이 들어간 달짝한 팥죽은 별미였다. 특히 나이만큼 새알심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정말 그렇게 먹어야 나이가 드는 줄 알았다. 그래서 동지 팥죽에 들어있는 새알심을 세며 먹었던 적이 있었다. 새알심을 만들 때도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아 공동 작업으로 했었는데, 그런 일도 없어졌다.

요즈음은 동지 팥죽을 끓여 먹는 집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찰이나 교회 및 식당 등에서 대량으로 동지 팥죽을 끓여 신도들에게 나눠주거나 식당에서 별미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코로나 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다 보니 동지 팥죽 먹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때는 집집마다 동지 팥죽을 끓여 먹다가 이제는 부지런하지 않은(?) 집에서는 동지 팥죽을 끓이지를 않으니 동지(冬至)에 동지 팥죽을 먹는지 어떤지도 모르게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우리의 고유한 풍속들은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을 멀리하다 보니 옛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오전에 동지(冬至) 기도를 드리러 임광사에 갔다가 거기서 만든 동지 팥죽을 얻어와 애들 아빠와 첫째와 몇 숟가락씩 나눠 먹으면서 동지(冬至)를 보내는 시늉만 했다. 날씨가 봄날 같고 겨울답지 않아 동지(冬至)도 동지(冬至)로 느껴지지 않았다. 코로나 19 사태로 임광사에도 신도들이 이전의 반에 반도 동지(冬至)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까지 드렸다. 코로나 19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한 번만 맞으면 될 줄 알았던 코로나 19 백신을 1차, 2차, 3차까지 연달아 맞으라고 하니 언제까지 맞아야 할지 답답하다. 동지(冬至)에 악귀를 쫓기 위해 팥죽을 뿌리는데 코로나 19도 함께 물러갔으면 좋겠다.

<새알심, 출처 : 오늘은 작은 설 동지 소년한국일보 (kidshankook.kr)>

오늘 동지(冬至) 시간은 오전 12시 59분이었다. 다음은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나오는 동지(冬至)에 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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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는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이며,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그래서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에 든다. 양력으로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태양력인 동지에다가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 하는 것이다. 이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라는 말처럼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 전하고 있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장가가는날’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다. 당나라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도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았다. 『역경(易經)』에도 복괘(復卦)에 해당하는 11월을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을 일년의 시작으로 삼았다.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唐)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으며, 충선왕 원년(1309)에 와서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뀔 때까지 선명력을 사용하였다. 이로 보아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구미(歐美) 각국의 성탄절(크리스마스)도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의 미트라교(Mithraism)의 동지 축제일이나 태양 숭배의 풍속을 이용해서 예수 탄생을 기념하게 한 것이다. 신약성서에도 예수의 탄생 날짜 기록은 없다. 농경민족인 로마인의 농업신인 새턴(Saturn)의 새턴네리아 축제가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성했고, 그 중 25일이 특히 동지 뒤 태양 부활일로 기념된 날이었다.

동짓날이 되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연못의 수면이 얼어붙어 얼음의 모양이 쟁기로 밭을 갈아놓은 것처럼 된다. 이것을 용갈이[龍耕]이라고 한다. 『동국세시기』 11월 월내조에는 “충청도 홍주 합덕지에 매년 겨울이 되면 얼음의 모양이 용이 땅을 간 것 같이 되는 이상한 변이 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언덕 가까운 쪽으로 세로 갈아나간 자취가 있으면 이듬해는 풍년이 들고,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복판을 횡단하여 갈아나가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혹 갈아나간 흔적이 동서남북 아무 데로나 종횡으로 가지런하지 않으면 평년작이 된다고 한다. 농사꾼들은 이것으로 이듬해의 농사일을 징험한다. 경남 밀양 남지에서도 용이 땅을 갈아 이듬해의 농사일을 징험한다고 한다(湖西洪州合德池 每年冬 有龍耕之異 自南而北 縱而薄岸則歲穰 自西而東 徑斷其腹則荒 或西或東或南或北 橫縱不整則荒穰半 農人推之來歲輒驗 嶺南密陽南池 亦有龍耕 以驗年事).”는 내용이 있다.

또 이날은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俗信)이 있으며,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이 있다. 동짓날 일기(日氣)가 온화하면 이듬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긴다. 또 동짓날이 추우면 해충이 적으며 호랑이가 많다는 믿음이 있다.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 또 일가친척이나 이웃간에는 서로 화합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풀어 해결하였다.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동지에는 동지팥죽을 먹는다.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이는데,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축귀의 뜻이어서 이로써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고 믿었다.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붉은 팥은 옛날부터 벽사(辟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모든 잡귀를 쫓는 데 사용되었다.

『동국세시기』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고 적혀 있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 행위의 일종이다. 그러나 동짓날이라도 동지가 음력 11월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해서 팥죽을 쑤지 않는다. 또 그 집안에 괴질로 죽은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는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는 사당에 팥죽으로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다. 경상도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벼락이나 마당에도 뿌리며 마을 입구에 큰 고목에도 뿌려 잡귀들의 동네 침입을 막는다. 강원도에서는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옹심’을 넣어 나이 수대로 먹는다. 일꾼들은 이날 팥죽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져야 한다고 한다. 날씨가 더워서 팥죽이 쉬면 이듬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여긴다. 충남 연기에서는 동짓날 동지불공(冬至佛供)을 드리러 절에 다녀오며, 집에서 팥죽을 쑤어먹는다고 한다. 또 애기동지에는 팥시루떡을 해먹고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는다. 그리고 중동지는 떡이나 팥죽 중 하나를 해서 먹는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喪家)에 보내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팥죽은 동지에만 쑤어먹는 것이 아니고 이웃이 상(喪)을 당하였을 때 쑤어 부조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는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요즈음도 이러한 풍습이 이어져 고사를 지낼 때에는 팥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고사의 목적은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성하기를 기원하고, 공사를 하는 사람은 공사가 아무런 사고 없이 완공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음식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었지만, 그 사실 여부를 떠나 팥이 지닌 여러 가지 효능으로 보아 건강식품임에는 틀림없다. 팥은 피부가 붉게 붓고 열이 나고 쑤시고 아픈 단독에 특효가 있으며, 젖을 잘 나오게 하고 설사, 해열, 유종, 각기, 종기, 임질, 산전산후통, 수종, 진통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동지 [冬至] (한국세시풍속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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