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섣달 그믐날로 내일이 구정(舊正)이라는 설명절이다. 지난 월요일 느지막한 오전에 설 차례상을 차리기 위한 준비를 위해 매년 가는 부전시장으로 향했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그날 유독 바람이 차갑고 많이 불었다. 이번 주부터가 설 대목이라고 할 수 있어 설 차례상을 준비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여겼는데, 예상했던 대로 서면에서 부전시장 쪽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정체가 시작되었다. 거기서부터 부전시장 맞은편 농협마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할 때까지 보통 같으면 5분에서 10분 정도 소요되는데, 오늘은 20분 이상이 걸려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하는 것은 시작일 뿐, 지금부터 전통시장으로 들어가서 차례상에 올릴 조기, 가자미, 상어, 명태, 오징어, 새우 등의 어물과 탕국에 들어갈 조개류는 물론 밤과 나물류까지 빼먹지 않고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협마트부터 차례상을 준비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 어떤 신문을 보니 전통시장보다 대형 마트를 선호한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부산은 5일장도 성황이고 부전시장은 인산인해였다. 코로나 19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곳에서는 통용이 되지 않았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5명 이상 모이지 말라는 것과 서울의 밤 9시까지 영업하라는 등의 조치는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고무줄처럼 정부 마음대로 행정 편의적 국민 길들이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5명 밀집 이전에는 9명까지로 한정을 했었는데, 갑자기 5명이 되더니 설과 추석 같은 명절에도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렇게 벌금으로 5명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하면서도 정부와 여당은 이런 5명의 밀집 제한을 비웃 듯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보란 듯이 인증샷까지 찍어 올리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부전시장으로 들어서니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발걸음을 자의적으로 떼서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떠밀려 앞으로 나아가야 할정도였다. 거기에다 흥정을 한다고 지르는 소리와 가끔 지나가는 행상들의 리어카 등으로 왁자지껄이었다. 농협마트에서 부전시장 쪽으로 가는 횡단보도만 경찰들이 나와서 질서 유지를 할 뿐 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였다. 애들 아빠가 운전도 해주고 구입한 무거운 생선 등을 들어줘서 그나마 힘들이지 않고 차례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11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각에 도착을 했고, 부전시장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구입한 뒤, 농협마트로 되돌아와서 법주와 튀김 가루 등을 추가로 구입하고 나니 오후 1시 반 정도가 되었다. 작년보다 물가가 올라 차례 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설명절이라고 해도 가족 상봉 자체를 자제하는 분위기라서 올해는 둘째도 집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월요일 저녁 내내 준비를 하여 둘째에게 당일 택배로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우선 보냈다. 비록 몸은 피곤해도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오징어와 새우 튀김, 소갈비 조림, 멸치 볶음, 오징어 무침, 명태전, 오이 소박이, 귤과 천혜향, 사과와 당근 및 비트 주스 등을 챙겨 보냈는데, 잘 먹겠다고 연락이 왔다. 설날이 다가오면 어릴 적 설날 생각이 난다. 윤극영 선생님의 '설날'이라는 노래가 저절로 입에서 흥얼거려진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라는 가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늘이 까치들의 설날이 아닌가 하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함께 살았던 날들로 되돌아가고 싶다.
오늘이 섣달 그믐이기 때문에 섣달 그믐에 대한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나오는 의미와 유래 등을 참고로 올린다. 어릴 적 설날이 되기 전날 밤은 집의 모든 방에 호롱불을 켜놓게 하고 대청에도 등을 걸어놓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식구들이 모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듯 했는데,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했다. 그렇게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는 것을 두고 수세(守歲)라는 의미도 몰랐고, 도교에서 전해된 풍습이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수세(守歲)란 지나가는 해를 지키면서 새해와 잇기 위해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결국 너무 졸려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장난을 친다고 언니들이 눈썹에 밀가루를 하얗게 칠해 둬서 아침에 일어나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일흔이 코앞에 와 있으니 인생무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 정의
섣달 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음력 12월 30일이다. 섣달 그믐은 세밑, 눈썹세는날, 제석(除夕), 제야(除夜), 제일(除日), 세제(歲除), 세진(歲盡)으로도 부른다. 이날을 제석(除夕)이라고 하는 것은 제(除)가 구력(舊曆)을 혁제(革除)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2) 유래
섣달 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이므로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이한다. 이러한 수세(守歲) 풍습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로서 우리나라에 역법(曆法)이 들어온 이래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세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통과 의례로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3) 내용
섣달 그믐에는 묵은세배[舊歲拜], 수세, 만두차례, 나례(儺禮), 약태우기, 연말대청소, 이갈이예방, 학질예방과 같은 풍속이 전한다. 또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벽온단(辟瘟丹)을 진상(進上)하기도 했다.
섣달 그믐은 묵은설이라 하여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일가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데, 이를 묵은세배라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저녁 식사 전에 하기도 하는데, 이날 만두를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다. 저녁에 만둣국을 올려 차례를 지내며 이를 만두차례, 만두차사, 국제사라고 한다. 한 해 동안 잘 보살펴주신 조상에 감사드리는 의식으로 해질 무렵 만둣국, 동치미, 삼실과, 포 같은 음식을 차려서 조상에게 올린다.
일부 가정에서는 복만두(보만두)라 하여 만두 하나 속에 엄지손톱만 한 작은 만두를 여러 개 집어넣어 만든다. 차례가 끝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만둣국을 끓일 때 복만두를 넣는데, 이것이 들어간 그릇을 받는 사람이 신년 복을 가져간다고 점친다. 소를 키우는 집에서는 만두를 소에게 먼저 먹이고 식구들이 먹는다고 한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지나가는 한 해를 지킨다는 뜻으로 밤을 새우는 풍습을 수세라 한다. 수세는 장등(長燈), 해지킴, 밤새우기라고도 부르는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인가에서는 다락, 마루, 방, 부엌에 모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켜놓으니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라 한다. 이는 곧 경신을 지키던 유속이다.”라고 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벽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데, 그 유래는 섣달 중 경신일(庚申日)에는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경신수세(庚申守歲)의 도교 풍속에서 나왔다. 경신수세의 풍습은 중국 한(漢)나라 때도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원종(元宗) 6년(1265)에 태자가 경신수세를 했고, 연산군(燕山君)도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성대하게 경신수세를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경신일에 밤을 새워 지키는 것은 동지가 지나 경신이 되는 날에 하는데, 섣달 경신일이 진정한 경신수세 또는 수야(守夜)라 한다. 이 풍습의 유래는 사람의 몸에는 세 마리의 시(尸)가 있어 삼시(三尸)라 하며 이것이 그 사람의 잘잘못을 기록해두었다가 연말 경신일에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고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병에 걸려 죽게 되므로 경신일에 밤을 새워 삼시가 몸에서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가 고하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다. 동지 이후의 경신일은 6년에 한 번 드는데 경신수세를 7번 하면 삼시신은 아주 없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42년 동안 경신수야(庚申守夜)하면 불로장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도교의 삼시설이 불교로 흡수되어 일부 사찰에서 행하고 있다.
민간에 전하기로는 이날 잠을 자면 영원히 자는 것과 같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밤을 샌다고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과 그 전 해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날 잠을 자면 계속 연결하여 새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관념에서 수세의 풍속이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집안 곳곳에 밤새 불을 켜 두면 광명이 비쳐서 복이 들어오고 잡귀를 쫓는다고 믿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불 하나씩을 식구불로 정해 점을 치는데, 새해 고생할 사람의 불은 가물거리고 운 좋을 사람의 불은 빛이 좋다고 한다. 또 개를 키우는 집에서는 이날 불을 밝혀두면 새해에 개가 잘 큰다고 한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2월초에 세모(歲暮)의 농촌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앞뒷집 타병성(打餠聲)은 예도 나고 제도 나네, 새 등잔(燈盞) 새발심지 장등(長燈)하여 새울 적에, 윗방 봉당(封堂) 부엌까지 곳곳이 명랑(明朗)하다. 초롱불 오락가락 묵은세배 하난고나.”라고 하여 떡 만들고 곳곳에 장등불을 켜놓고 초롱불을 들고 묵은세배를 하러 다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어린아이들이 곤하여 졸면 야단을 치면서 “오늘 저녁에 자면 눈썹이 희게 센다.”라고 말하며 잠을 못 자게 했다. 지금도 어린이들이 잠을 자면 밀가루를 몰래 눈썹에 칠하고 밤새 나이를 먹어 눈썹이 세었다고 놀리고,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된다고 놀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불총’이라 하여 타버린 재를 자는 사람의 팔다리에 놓고 다시 불을 붙여 뜨겁게 하여 잠을 못 자게 하기도 한다.
수세 풍속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면서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풍속인데, 이날 밤에는 밤을 새우기 위해 윷놀이나 화투를 치면서 놀며, 주부들은 세찬 준비로 바쁜 가운데 감주나 과줄, 호박엿 따위를 내놓는다. 유만공의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이날 “달걀 같은 만두며 꽃 같은 적을 해놓고 찬품을 많이 대접하니 특별한 정이라 하였다.”라고 한 것처럼 매년 세모 때는 다양한 찬거리나 음식을 주고받는데 이를 세찬(歲饌)이라 하였다. 세찬 속에는 속칭 총명지(聰明紙)라 하여 특산품의 물목을 적은 편지를 함께 넣었으며, 궁중에서는 70세 이상 관원에게 쌀과 어류를 나누어 주었다.
조선시대에는 섣달 그믐에 재앙을 쫓기 위한 연종제(年終祭)로 나례의식을 펼쳤는데, 민간에서는 대나무를 태워 요란한 소리를 내는 폭죽이나 대총, 지포인 딱총을 놓기도 하고 궁중에서도 연종포(年終砲)를 터뜨렸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숨어 있던 잡귀들이 놀라서 도망가고 무사태평(無事泰平)하다는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는 궁중 풍속으로 제석 전날부터 연종포라 하여 대포와 불화살인 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울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청단(靑壇)이라는 나례의식이다. 이것은 마치 둥근 기둥 안에 기름 심지를 해박은 것과 같이 하여 그것을 켜놓고 밤을 새워 징과 북을 치고 나발을 불면서 나희를 행하는 것이다.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도 빙등(氷燈)을 설치하고 나례를 행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섣달 그믐날 내의원에서 벽온단이라는 향을 만드는데, 이것은 염병을 물리치는 데 유용하다 하여 임금은 설날 아침에 그 향 한 심지를 피운다고 한다.
섣달 그믐은 한 해를 결산하는 마지막 날이므로 밀린 빚이 있으면 이날 안에 갚고, 그러지 못하면 정월대보름 이전에는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섣달은 ‘남의달’이라 하여 한 해를 조용하게 마무리한다. 성주, 조왕, 용단지 같은 가신(家神)에게도 불을 밝혀주는데 예전에는 종지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만들어 넣어 불을 켰다. 섣달에는 매사를 정리하고 큰 물건을 함부로 사지 않으며, 솥을 사면 거름에 엎어두었다가 그믐날에 부엌 아궁이에 걸면 탈이 없다고 한다. “섣달 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라고 하여 ‘막가는 달’에 마무리를 잘하는데 “숟가락 하나라도 남의 집에서 설을 지내면 서러워서 운다.”라는 말이 있으므로, 전에 빌렸던 남의 물건도 모두 돌려주고 돈도 꾸지 않으며 혼인도 하지 않고, 연장도 빌려주지 않는다. 이날 잠을 자지 않고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여 새해 맞을 준비를 하면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경건하게 새해를 맞이하고자 하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출처 : 한국세시풍속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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