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설날이다. 어릴 때는 한 살을 더 먹는 설날이 그리도 기다려지고 뭔진 몰라도 신이 났었는데, 결혼을 하고 시댁에 가서 차례상 준비를 하면서부터 설날이 차츰 부담이 되었다. 그러다가 큰집에서 차례를 모시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서 설과 추석 명절 차례도 모셨고 기제사까지 지내게 되고부터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까지는 명절 차례를 모시고 바로 산소까지 다녀오려고 하니 하루가 꼬박 걸렸고, 큰애는 어른들이 산소를 다녀오는 사이에 차례를 지낸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차례를 모시지 않으면 안 되느냐는 불평 아닌 불평까지 했다. 그렇지만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타이르면서 그럭저럭 기제사는 20년 가까이, 설과 추석 차례도 10년 이상 모시고 있다.
명절 차례와 기제사를 합치면 일 년에 네 번은 차례와 제사를 모시기 위한 장을 보고 음식 장만을 해야 하며 차례상을 차리고 모셔야 한다. 처음에는 기제사인 경우 할아버님과 할머님, 아버님과 어머님 따로 제사를 모셨는데, 제사를 줄이자고 하여 할아버님 제일에 할머님도 함께 지내고, 아버님 제일에 어머님도 함께 모시기로 하여 네 번을 두 번으로 줄여서 지금은 설과 추석 명절 그리고 조부모님과 부모님 제사, 일 년에 네 번을 모시고 있다. 작년보다 올해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오르지 않은 품목이 없다시피 하여 비용이 훨씬 많이 든 것 같다. 그렇다고 가지 수나 양을 줄일 수도 없고 해서 다른데 쓰는 것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코로나 19로 경제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계속 이렇게 될 것 같다.
올 설날에도 둘째가 오지 않아 큰 애와 셋이서 차례상을 준비하고 아침 일찍 차례를 모셨다. 시어머님께서 살아계실 때 늘 하시던 말씀이 기제사라고 크게 부담을 가지지 말고 준비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여 정성껏 조상님들을 모시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몇 가지만 차려서 정성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는 것이 또한 자식들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애들 아빠도 가능한 간소하게 준비하여 지내자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나 자신이나 우리 가족들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어떤 바람을 가지고 명절 차례나 기제사를 모시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 된 도리가 살아생전에는 효도를 다해야 하고, 돌아가신 뒤에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조상님들을 모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례상이나 기제사를 준비하고 모시기까지 비록 몸이 고되고 피곤하며 비용도 만만찮게 들지만, 어떻게 융통을 하면 이 정도의 비용이나 몸 보시는 아직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하게 지내는 동안은 지금처럼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은 물론 기제사 때도 정성을 다해 모시려고 한다. 준비를 할 때는 부담이 되지만 지내고 나면 항상 홀가분하면서 어깨에 지고 있던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듯하다. 일 년에 네 번의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벌써 한 번이 지나갔으니 올해 큰 일의 1/4이 줄어든 셈이다. 차례상을 마련하면서, 부추와 두부 및 명태 등의 붙임도 만들고, 오징어와 새우 및 고구마와 단호박 튀김도 하고, 찰떡과 시루떡 그리고 과일(수박, 배, 사과, 귤류, 바나나 등)도 구입하고, 상어와 조기찜 등도 준비하였다.
또한 열합과 조개 등이 들어간 탕국을 끓이고 콩나물, 숙주, 도라지, 시금치, 고사리 등으로 만든 나물로 무치고 쇠고기 조림도 만들고 법주도 구입하여 차례를 모셨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차례를 모시고 난 뒤의 나물과 각종 전과 튀김 및 조기찜과 가자미 구이 그리고 쇠고기 조림 등을 넣은 매운탕을 만들면 이 또한 별미이다. 특히 여러 가지 차례상의 반찬들로 우린 국물은 한 마디로 맛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진하고 구수하기까지 한다. 식은 반찬들을 따뜻하게 데워 단품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여러 가지를 넣어 매운탕처럼 끓어 먹으면 전혀 색다른 맛이 난다. 특히 둘째가 어릴 때부터 이 맛을 알아 차례나 제사를 모시고 나면 이 얼큰한 탕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집에 오지 않아 많이 서운하다.
설과 추석 명절 차례상이나 기제사를 모시고 나서 차린 음식들을 정리하는데도 아주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위와 같은 매운탕이 아닐까 한다. 오래전부터 시어머니께서 항상 설과 추석은 물론 기제사를 모시고 난 뒤에 남은 반찬들을 적절히 넣어 만들어주셨던 기억을 되살려 우리 집에서도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왜 시어머니께서 그렇게 매운탕을 만드셨는지 충분이 납득이 간다. 시댁에서 차례를 모실 때는 산적(꼬지에 무, 당근, 파, 어묵, 쇠고기, 맛살 등을 끼워 밀가루 반죽에 묻혀 프라이팬에 구운 것)까지 만들어 함께 넣었으니 맛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설과 추석 명절이나 기제사가 아니면 이런 반찬들을 준비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특유의 매운탕은 역시 이때가 아니면 맛을 볼 수가 없는 별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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