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잔뜩 흐리다가 오후부터 햇볕이 비쳤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 한낮 기온이 영상 섭씨 10도를 넘었는데도 쌀쌀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는 표현이 제격인 하루였다. 5일장이 열리는 날이라서 오전에 일찍 장터에 나갔는데,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그런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이 별로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목도리를 해도 몸이 오싹하여 다른 날보다 빨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인들도 추운지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고, 두툼한 옷을 입어 움직이는 것이 둔해 보였다. 그런데다 경기마저 좋지 않아 모두들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 19에서 벗어나고 경기도 살아났으면 하는데, 여전히 어둡고 차가운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을 다녀와서는 약수터에서 길러오는 약수가 동이나 어쩔 수 없이 뒷산 약수터로 향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산 위는 바람이 더 강하게 불었고 차가웠다. 그래서인지 등산객들이 적어 보였고 큰 소나무들과 분홍겹벚꽃나무 가지들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몸이 날아갈 정도였는데, 약수를 긷기 위해 양손에 든 2리터 페트병이 든 주머니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심하게 흔들렸다. 약수터에 도착을 하니 보통 때와 달리 운동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었고, 바람 소리가 더욱 강하게 났다. 약수를 긷기 위해 빈 페트병을 세워 놓으니 강한 바람에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바로 넘어지고 말았다.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어 약수 길을 페트병을 씻고 약수를 긷는데 애를 먹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곳에 와서 약수를 긷는데 이렇게 바람이 강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약수를 길어 두고는 운동을 하러 운동기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에 나란히 게양되어 있는 태극기와 동바르게살기회원기가 강한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엄청났다. 태풍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강한 봄바람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을 시샘이라도 하듯 요란하게 불었다. 지난주에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했던 산수유꽃도 막 샛노랑 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강풍에 움츠려 드는 듯 보였다. 그 뒤쪽의 굴참나무 위에 지어진 커다란 까치집(?)이 보여, 언제 저렇게 큼직한 집을 지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오후에 해운대 벡스코에 볼 일이 있어 간단하게 근력 운동만 하고는 약수를 들고 매고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강한 봄바람은 쉬지 않고 계속 부는 것이 아니라 잠잠하다가 세차게 불다가를 반복하는 형태였다. 그래서인지 약수터 쪽에서 반대편으로 조금 내려오니 전혀 바람이 불지 않아 잠깐 별천지를 다녀온 느낌이었다. 봄은 이렇게 사람을 잘 놀라게도 하는 모양이다. 아무리 강한 바람이나 꽃샘추위로 봄이 오는 것을 훼방한다고 해서 오는 봄이 뒤돌아갈 리는 없고, 이미 돋아난 새싹과 새순이 다시 땅속이나 나뭇가지로 숨을 리는 더더욱 없다. 자연의 봄은 이렇게 거침없이 와버렸고 따사롭고 포근한 날들이 이어질 것 같은데, 현실의 봄은 언제 올지 기약이 없다. 코로나 19 이전의 일상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 당시는 몰랐지만 그런 자유스러운 나날이 사라지고 보니 이제야 그 당시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늘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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