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엄쉬엄 봄비가 내린 주말이다. 이따금 빗줄기가 굵어지기도 했지만 봄꽃들을 배려해서인지 장대비는 아니었고, 바람도 간간히 세찼지만 꽃잎이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부는 듯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5일장에도 장 보러 나온 시민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최근 들어 화창한 날씨를 보기 어렵고, 잔뜩 흐리지 않으면 비가 오는 궂은날이 반복되고 있다. 세상 일들은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또는 유심소현(唯心所現)이라는 말을 하는데, 작년 1월 중순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사태로 모두들 우울하고 시름이 많은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하늘까지도 찌푸린 날이 많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망상도 해본다.
그렇지만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다. 아파 보지 않으면 아픔으로 인한 불편함과 불안은 물론 그로 인해 쓸데없는 시간들을 많이 허비하고 만다는 사실이 더 괴롭다. 그래서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해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질병으로 인하여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 정도는 병치레를 하며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평소에 자신의 건강 관리에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어른들이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실 때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는데, 정작 그 나이가 되고 보니 하루하루가 건강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맑은 날에는 멀쩡하던 무릎과 허리 및 어깨가 비라도 내리려고 하면 쑤시고 결리고 당기고 하여, 일기 예보를 듣지 않아도 비가 오려나 하며 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있으니 나이가 들기는 들었고, 몸도 이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큰 병 없이 고만고만하게 버텨온 몸, 눈과 귀, 코와 입, 머리는 물론이고 손과 팔 그리고 발과 다리 및 허리와 등 등 오장육부와 세포 하나하나에 자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무사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생각날 때마다 감사하다는 기도를 한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소란스러워도 하늘의 이치와 순리는 변하지 않고 지켜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내린 비로 텃밭에 새로 구입하여 심은 묘목들이 모두 잘 살아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크지 않은 텃밭을 가꾸면서 처음에는 힘만 들고 오가는 교통비만 허비된다고 여겼는데, 자주 오가면서 텃밭에 자라는 식구들인, 상추, 시금치, 겨울초, 당귀, 돌나물, 쑥, 무, 배추, 쪽파, 당근, 비트, 들깨, 쑥갓, 양파, 마늘, 산마늘, 우엉, 토란, 고구마, 감자, 대파, 아스파라거스, 부추, 참마, 더덕, 도라지, 둥굴레, 박하, 호박, 오이, 여주, 참외는 물론 감나무, 아로니아나무, 배나무, 모과나무, 라일락나무, 개나리나무, 목련나무, 죽단화나무, 가죽나무, 매실나무, 골담초나무, 가시오가피나무, 자두나무, 뽕나무, 치자나무에다 작약과 분꽃 및 나팔꽃과 봉숭아꽃을 가꾸고 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해마다 늘어나는 텃밭 식구들이 전해주는 신비로움과 경외로움은 직접 씨 뿌리고 가꾸며 수확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즐거운 일들이 많고, 놀라움과 감사함이 저절로 우러날 때도 많다. 특히 씨를 뿌리고 얼마 있지 않아 돋아나는 새싹들이 전해주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는 힘들고 지쳐 있는 마음에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명약이고, 땀을 흘린 이상의 결실을 안겨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삶의 희열을 더해주는 청량제가 된다. 땅이나 자연만큼 뿌린 대로 나고 가꾼 대로 거두게 하는 정직하고 신실한 대상은 없다. 가끔 비바람이 훼방을 놓아도 그것도 자연의 정화 작용이라고 여기면 마음마저 편안하다. 오늘 내린 봄비도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따라 온 것이라 여기니 고마울 따름이다.
땅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를 보니 중국의 시성(詩聖)인 소릉(少陵)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한시가 떠오른다.
春夜喜雨(춘야희우)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소릉(少陵) 두보(杜甫)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봄을 맞아 모든 것을 자라게 하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찾아와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만물을 적시지만 가늘어 소리가 없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으로 온통 어두운데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 강가 배의 불빛만 홀로 밝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새벽에 붉게 물든 곳을 바라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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