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스럽고 살벌한 벌판에 홀로 내버려진 듯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믿고 기댈만한 기둥조차 보이지 않고, 비빌만한 둔덕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거짓과 위선으로 무장하고 속고 속이는 미련한 곰들과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이내 공격을 서슴지 않을 승냥이들이 우글거리는 길거리에는 희미한 가로등만이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졸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세상이 망가졌는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 단초 하나 건질 수 없어 멍한 눈으로 창밖을 스쳐가는 바람 따라 마음만 혼란스럽다. 그동안 오랜 세월 찾아 헤매었던 꿈과 행복의 그림자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또 방황을 거듭하고 있지만 점차 날은 저물어가고 있다.
내 한 몸 가누기도 벅찬데 자식들에 남편까지 보살펴야 하는 신세를 탓할 수 없어 가끔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도 있다. 내 안의 나를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면서 자꾸 바깥의 일들에 신경이 더 가는 것은 아직도 제대로 익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그쪽이 더 자신을 추스르는데 용이하다고 여기는 것인지 이제 스스로도 분간이 잘 되지 않고 어지럽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아름다운 행복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던 확신도 어느새 세월의 흐름 속에 차츰 엷어만 간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은 아직도 여전히 청춘이라고 우기지만 몸은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노화 현상이 여기저기에서 꼼지락거리며 나타나서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스스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60년 이상을 아무렇게나 쓴 몸을 두고 감히 너무 오래되어 쓸 수가 없다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몸에 가혹하고 미안하다. 용케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버티면서 정상 작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적이고 감사할 일이다. 지금껏 찾아 헤매었던 행복은 이미 넘치도록 누리고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조금씩 깨달으니 마음은 외려 편하고 고요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아무 일 없이 일어나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는 몸을 제삼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으면 신기하고 기적의 연속이다. 5일 장이 열리는 날은 사고 싶은 찬거리들과 과일 등을 바리바리 사서 챙겨 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또 다른 기적이다.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고 마시며 가족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순간도 기적이 따로 없다.
모든 일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도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궤도를 벗어나는 별일이 생기면 얼마나 성가시고 신경을 써면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그런 일들이 거의 없으니 이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살아가는 나날 속에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먹고 자는데 불편함이 없으며, 가족들까지 아무런 불상사 없이 무사히 지내고 있다는 것은 행복 중의 행복이다. 눈을 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보고 더 많은 것을 탐하고 집착하면 그것이 바로 불행의 시작이고 몸까지 망친다.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수도 없이 많은 베풀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정리해 보면 스스로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고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놀랄 것이다. 또한 당연히 주어지고 있는 것들, 예를 들면 공기, 물, 바람, 가족들의 배려와 사랑, 친척과 친구 및 동료들의 응원과 관계는 물론 일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자신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면 살아가는 폭이 더 넓어지고 깊이 또한 더 깊어진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듯이 진정한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아름답고 참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한다면 아무리 혼돈의 세상을 살아도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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