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末伏, 8월 10일)과 칠석(七夕, 8월 14일)을 거쳐 처서(處暑, 8월 23일)를 지나니 가을이 물씬 풍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한낮의 따가운 햇살도 이미 한여름의 이글거리던 열정마저 식어버린 것 같다. 이런 무더위는 난생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르며 땀을 훔쳤던 때가 있었느냐 싶을 정도로 산과 들을 봐도 가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이 명약이라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아무리 지내기 힘든 폭염과 열대야도 때가 되면 지나가버리고 가을을 맞고, 가을을 즐길만하면 이내 차가운 겨울로 접어들며, 그리 혹독한 강추위도 오래지 않아 따사로운 봄날에 자리를 비켜주고 만다. 이렇게 자연은 순리대로 끝없는 변화와 묘기를 연출하고 있다.
비 없는 여름 장마가 지나고 불볕더위가 이어지다가 뒤늦게 가을장마와 태풍이 찾아와 며칠 뒷산을 오르지 못하였다. 어젯밤에도 비가 제법 많이 내렸지만 아침부터 맑아 오늘 오후 늦은 시간에 오랜만에 뒷산 약수터를 다녀왔다. 이전에 길러왔던 약수는 이미 바닥이 나고 생수를 구입하여 마시다가 겨우 끈을 이를 수가 있게 되었다. 수돗물이 좋으면 수돗물을 끓여 먹으면 되겠지만 수돗물을 믿을 수가 없고, 정수기를 통한 물도 미네랄 등이 부족하다고 하여, 운동도 할 겸 시간을 내어 뒷산 약수터로 올라가서 약수를 길러온다. 약수를 길러오는 일은 번거롭고, 물의 무게도 상당하여 늘 좋은 정수기를 들여놓겠다고 하지만, 약수터의 물이 더 좋을 것 같아 물 길어오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해가 저물어가는 약수터에서 바라본 파란 가을 하늘은 너무나 평화롭고 편안하다. 완전히 파란 하늘이 아니라 구름이 띄엄띄엄 노닐고 있는 수채화 같은 가을 하늘은 더욱 푸르러 보이고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집안에 있으면 겨우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네모진 사각형 하늘이 전부이지만, 산 위에 올라 바라보는 하늘은 시야가 확보된 만큼 더 넓게 즐길 수 있어 좋다.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맑히는 하늘만이 아니라 코와 폐까지 깨끗이 해주는 맑은 공기까지 더하니 더욱 좋다. 보통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독서의 계절, 남자의 계절, 결실의 계절, 사색의 계절 등으로 부르지만,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고 하늘과 동화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드는 때, 코로나 19로 살얼음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면서 자유롭게 숨을 쉬고 온전히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기적 같은 나날이다. 거기에다 사방을 둘러봐도 안심하고 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들 모두가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점도 기적이고 감사할 일이다. 평소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살아가는 삶 자체만 봐도 일정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안전하고 막힘없이 나아가고 있는 나날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감사하고 사랑해야 한다.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이 유일한 삶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걸고 감사하며 살려한다.
'행복한 오늘을 위해 > 소소한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와 배추가 자라는 것을 보며 (0) | 2021.09.13 |
---|---|
혼돈의 세상을 살면서 (0) | 2021.09.02 |
칠월칠석이라는데 (0) | 2021.08.14 |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0) | 2021.08.06 |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0) | 2021.06.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