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갑자기 장대비가 되었다가 어느새 실비로 바뀌면서 하루 종일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졌다. 지금도 창밖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여전히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리는 모양이다. 어제가 음력으로 5월 초하루여서 임광사에 초하루 법회에 참석하고 왔다. 텃밭이 임광사 근처에 있어 아침 일찍 가서 장날 구입해 두었던 대파 모종을 심고 집과 텃밭에서 키운 고구마순도 추가로 더 심었다. 어제는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 가까이까지 올라가서 모종들을 심고 나자 곧바로 고구마순은 축 늘어져 보기에도 딱해서 비록 오늘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알았지만 애들 아빠에게 대파와 고구마순에 물을 좀 줬으면 좋겠다고 하여 물까지 주고 왔다.
텃밭에는 견실하게 영근 매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어 간 김에 40kg 정도를 수확해왔다. 청매실이 효소를 담는 데는 약성이 맞다고 하지만 홍매실로 담근 매실청도 음식을 만들 때 넣어 먹을 수 있고, 더 익은 것은 매실주로도 아주 맛이 좋은데, 매년 효소나 술을 담는 것이 번거로워 격년으로 담을까 하고 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도 기분이 좋은 것은 어제 심었던 대파와 고구마순 모종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할 수 있어 땡볕에 말라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며칠 비가 내리지 않자 시들어가는 토마토가 있어 안타까웠는데 충분한 물기를 받아 생기를 되찾지 않을까 해서이다. 곧 장마철에 접어들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적당힌 양의 비가 내려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비가 이렇게 내리면 낮인데도 어두컴컴하여 마음이 가라앉지만 두터운 햇살 아래 목이 타들어 가던 텃밭 식구(농작물)들이 흠뻑 비를 맞으면 즐거워하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여, 이내 가라앉았던 마음이 활짝 펴이고 만다. 이번 비로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당근, 아욱, 들깨, 고구마, 쪽파, 상추, 대파, 도라지, 호박, 열매 마, 비트, 쑥갓, 복수박, 참외, 하수오, 박하, 미나리, 둥굴레, 도라지, 더덕, 옥수수, 당귀, 쑥, 돼지감자 등은 물론 블루베리, 아로니아, 매실, 단감, 대봉, 자두, 배, 치자 그리고 봉숭아, 분꽃, 채송화, 나팔꽃 등도 쑥쑥 잘 자라게 될 것이다. 자연은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더라도 자신들만의 정해진 법칙과 순리대로 자라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매년 똑같이 두둑을 만들어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아주면서 거름을 주며 정성을 들이면 어김없이 뿌린 대로 싹이 트고 쑥쑥 자라 아낌없이 잎이나 열매를 주고, 아름다운 꽃도 피며 즐거움을 한껏 안긴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리를 털고 떠난다. 그렇게 되면 다시 다른 모종이나 씨앗이 심기고 그들도 똑같은 순환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삶을 아무런 불평불만이나 시시비비도 따지지 않고 살아다 자취를 감춘다. 일년생이면 한해로 다년생이면 뿌리를 통해 다음 해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만남을 설레게 한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씨앗에서 거대한 뿌리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면 언제나 신비롭고 경이롭기만 하다. 그래서 자연에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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