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반짝 추위가 지나니 또다시 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뒷산 약수터를 오르내리는 길은 땅이 얼었다 녹아 가랑비라도 내린 듯 촉촉하게 젖어 있어 먼지가 날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숲 속이나 숲 바깥이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쪼이고 바람조차 없어 완연한 봄처럼 느껴졌다. 두툼한 방한 등산복이 아닌 늦가을에나 입을 등산복을 입고 나섰는데도 전혀 추운 줄을 모르겠고, 오히려 배낭에 물을 길어 올 때는 등에 땀이 날 정도였다. 올겨울이 매서울 것이라던 일기 예보가 여지없이 어긋나고 있다. 그래서 겨울인지 내일부터 다음 주 초까지 한파가 몰아친다고 하는데, 그래야 겨울이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동장군과 한바탕 씨름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꽃댕강나무에는 그동안 하얀 별꽃들이 옹기종기 아름답게 피어 있었는데, 며칠 전 한파로 꽃들이 거의 일그러져 말라 발려 볼품이 없어졌고, 겨우 몇 송이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겨울에 들어서도 양지바른 곳이라 노랑꽃을 피우고 있던 도깨비바늘꽃도 오후의 두터운 햇살을 뒤로하고 이제는 도깨비바늘만 잔뜩 고추 세우고 누가 스치고 지나가지 않나 벼르고 있는 듯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철도 모르고 노란 개나리꽃이 곱게 피어 있고, 그 옆에는 계뇨등 열매가 지난 여름날의 추억들을 전하는 듯 올망졸망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꽃의 크기만으로 보면 꽃댕강나무꽃과 계뇨등꽃 거의 비슷하고 바깥쪽 꽃 색깔도 비슷하다.
그저께는 다른 산을 잠깐 다녀왔는데, 거기에는 늦가을처럼 샛노란 감국꽃이 무리를 지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그날도 해가 지기 전까지 아주 포근하여 겨울 같지가 않았다. 감국꽃 외에도 애기동백꽃이 아름답게 피어나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늘은 뒷산 약수터로 향할 때 동아대 승학캠퍼스를 통과해서 올라갔는데 캠퍼스에도 애기동백꽃과 동백꽃이 활짝 피어 있었고 은은한 향기를 뿜는 은목서도 만났다. 매년 가끔 애기동백꽃이 아름답게 피었을 때 한 번씩 찾아오는데, 올해는 다른 해보다 겨울다운 날씨가 적어서 그런지 아직도 애기동백꽃이 시들지 않고 곱게 피어 있었다. 또한 동백꽃도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피어나고 있어 이맘때가 동백꽃을 즐길 수 있는 적기 같았다.
세상은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돌아가고 있지만 자연은 정해진대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때가 되면 찾아왔다 때가 되면 가고 있다. 한겨울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는 아직 기척도 없는데 벌써 분홍겹매화는 얼마나 성질이 급했던지 벌써 빨간 꽃봉오리를 잔뜩 부풀어 올리고 있었다. 살짝 건드리기라도 해도 당장 꽃을 터뜨릴 것 같은 고혹적인 꽃봉오리들을 보니 봄이 곧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매화라고 하니 지난번 거제 스님을 방문하였을 때 아름답게 피어 있던 섣달에만 핀다는 샛노란 납매(臘梅)가 생각난다. 작년 같은 경우도 12월 말에 철도 모르고 매화가 핀 기억이 난다. 겨울이 되어도 어떤 꽃이든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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