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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오늘을 위해/소소한 행복

4월 중순의 피아골

by 감사화 202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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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여행의 첫날인 지난 월요일(4월 11일) 오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바로 피아골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기 전에 조용한 곳을 찾아 산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피아골을 택하게 되었다. 천년 고찰이라는 연곡사를 지나 오르막 길을 따라 2 ~ 3km 올라가니 더 이상 자동차가 갈 수 없도록 되어 있어 그 근처에 주차를 하고 걷기로 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등산객들조차 없고 이전 같으면 길 양쪽으로 물건들을 내놓고 팔던 가게들도 거의 문이 닫혀 있어 삭막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새순이 돋아나고 있는 나무들과 아직 지지 않은 산벚꽃과 진달래꽃이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았다.

<피아골의 봄 풍경>
<진달래꽃이 활짝 핀 피아골>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피아골>
<산벚꽃이 곱게 핀 피아골>
<어느 방향을 보나 연초록으로 물든 피아골>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사로운 4월 중순인 데다 자연의 소리만 들려오고, 맑은 공기가 폐 속까지 씻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상쾌하고 고요하기까지 했다. 지금 이때의 연초록 산색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눈이 호강을 했다. 여유롭게 천천히 걸으면서 콸콸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 소리와 가끔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거기에다 나무와 바위를 타고 달리는 다람쥐들까지 피아골 속으로 빠져들면서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쌍명재() 이인로 선생의 산거(山居), "산에 살면서"라는 한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무런 기약도 없이 갑자기 심산유곡에 들어와서 그런가 보다. 이 한시는 경상도 고령() 미숭산() 반룡사()에 들러 지었다고 하며, 유거(幽居)라고도 한다.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봄은 가도 꽃은 아직 피어 있고
天晴谷自陰(천청곡자음) 하늘은 갰건만 골짝은 절로 그늘 지네.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소쩍새 한낮인데도 울고 있으니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비로소 깨닫노라, 깊은 골에 사는 줄을

끝도 없는 피아골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목이 말라 맑은 계곡 쪽으로 잠시 들어가 깨끗한 물을 한 모금 마시니 속까지 비워지고 맑아지는 것 같았다. 일행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피아골에 정말 잘 왔다고 좋아들 했다. 인적이 완전히 끊어진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거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이고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속을 몽땅 잊어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지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일상생활에서 단 몇 분이라도 진정한 자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몸은 물론이고 눈도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피아골이 아니더라도 자주 산과 들로 나가 몸과 마음을 비우면서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을 갖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콸콸 맑은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피아골의 계곡물>
<오랜만에 사람을 보는 듯 갈 길을 멈추고 선 다람쥐>

네이버 지식백과에 실린 피아골에 대한 내용이다.

피아골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내동리(內東里) 소재 연곡사에서 반야봉(般若峰:1,751m)에 이르는 연곡천 계곡이다. 피아골은 전체 길이가 약 20km 정도이고,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의 중턱에서 발원한 맑고 풍부한 물이 임걸령·불무장 등의 밀림지대를 누비며 피아골 삼거리·연곡사 등을 지나 섬진강으로 빠진다고 한다. 폭포·담소(潭沼)·심연이 계속되는 계곡미가 뛰어난데, 특히 이곳의 단풍은 지리산 10경(景)의 하나로 손꼽힌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옛날 이 일대에 피밭[稷田]이 많아서 ‘피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변해 피아골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한말(韓末) 격동기, 여수·순천사건, 6·25전쟁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10월 말에는 전국에서 모이는 등산객들이 피아골 단풍제를 지내는데, 이 산신제는 1977년부터의 연례행사가 되었다고 한다.

<출처 : 피아골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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