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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풀 그리고 차/꽃과 풀

매화는 언제 피려나?

by 감사화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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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로 들어서는 12월이 되니 벌써 봄을 알리는 매화(梅花)가 보고 싶다. 지난해에는 12월 말 동아대 승학캠퍼스 교정의 양지바른 곳에 분홍겹매화가 피어나 깜짝 놀란 적이 있었고, 1월 초순부터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지난겨울은 매서운 한파가 거의 없이 포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올해도 매화가 일찍 필 것 같아서 빨리 매화를 봤으면 하고 안달을 부린다. 매화는 눈 속에 피어나 있으면 멀리서 봐 눈인지 매화인지를 모를 정도라는 시들도 많다. 또는 매화를 찾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가지 끝에 매화가 피어 있었다는 깨달음과 연관시킨 시들도 읊었다. 그만큼 매화를 사랑한 선비(남정네)들이 많았는데, 매화가 선비의 곧은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겨울비를 맞고 고혹적으로 피어 있는 분홍겹매화(2020년 1월 7일)>
<화사하게 피어나기 시작한 백매화(2020년 1월 21일)>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백매화(2020년 1월 29일)
<군데군데 활짝 핀 백매화(2020년 1월 29일)>
<활짝 피어나 고운 자태를 뽐내는 홍매화(2020년 2월 14일)>

선비(남정네)가 아니라고 해도 아낙네들도 매화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을까? 매화를 보면 아릿따운 자태도 자태이지만 그윽한 향기는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어 꽃중에서 최고라고까지 했다. 매화 향기는 다른 꽃보다 더 멀리까지 퍼져나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고 그 향기에 취한다고 한다. 특히 달이 휘영청 밝은 달밤이나 눈이 흩날리는 칠흑 같은 밤에 보는 매화는 더 고혹적이고 향기 또한 색다르다. 보통 낮에 매화를 보러 이름 난 곳으로 찾아가지만,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달밤이나 그믐밤에 매화를 감상하러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낮에 보는 매화보다 밤에 보는 매화가 훨씬 운치가 있고 색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혼자 아니면 연인과 단 둘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흐드러지게 핀 매화(2020년 2월 13일)>
<칠흑같은 어둠에 더욱 돋보이는 매화(2020년 2월 9일)>

거의 10년 전 텃밭에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매실나무 500주를 심었었는데, 도저히 관리를 할 수가 없어 이후 아는 분들께 그냥 드리기도 하고 결실이 못하거나 병충해에 약한 것들은 솎아주기도 하여 지금은 50 ~ 60 그루 정도 남아있다. 올해도 10 그루 이상을 솎아주었는데, 내년에는 20 그루 정도만 남기고 다른 나무들로 대체를 할까 한다. 그렇지만 이른 봄부터 텃밭을 매화로 아름답고 향기롭게 장식해주는 매실나무의 수를 줄인다는 것은 고통 중의 고통이다. 흰색도 있지만, 분홍색, 옅은 연두색 등 여러 가지 색으로 만발해 있는 매화를 보면 모든 시름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리는 것 같아 좋은데, 점차 그루 수를 줄이게 되면 그만큼 매화를 맘껏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매실나무는 가지치기와 거름주기 그리고 적과(많이 매달린 매실 솎아주기)와 수확 등 보통 6월까지 일거리가 이어지지만 그 이후에는 무성하게 잎이 자라나고 가지도 굵어질 뿐이다. 매년 매화가 피기 전에 가지치기를 하는 작업이 가장 시간과 힘이 많이 드는 것 같지만, 수확할 때 충실하게 매달린 매실을 보면 뿌듯하다. 텃밭에 직접 재배하다 보니 매실나무에서 매화가 피면 꽃망울로 꽃차를 만들고 수확한 매실로 매실청과 매실주를 담그는 일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매실나무를 가꾸기 전에는 매화를 보면 그냥 아름답고 향기가 좋다는 정도였는데, 매실나무를 직접 가꾸다 보니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나 관심을 가지면 달리 보이는 법인가 보다. 양산 통도사에도 매년 2월 초에 찾아가 자장매를 보고 온다.

<올해는 너무 늦게 찾아가 겨우 남은 몇 송이만 보게 된 통도사 자장매(2020년 3월 8일)>
<통도사 일주문 들어가는 오른편에 서 있는 활짝 핀 능수매(2020년 3월 8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보면 매화(梅花)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소교목으로, 학명은 Prunus mume S. et Z.이다. 높이는 5m 정도 자라고, 가지는 초록색이며 잔털이 돋는 것도 있다. 잎은 어긋나고 난형 또는 넓은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예리한 잔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연한 홍색이 도는 흰빛으로 향기가 강하다. 꽃잎은 다섯 개인 것이 기본형이지만 그 이상인 것도 있다. 열매는 살구 비슷하게 생기고 녹색이며 털로 덮였으나, 7월이 되면 황색으로 되고 매우 시다. 홍색으로 익기 전에 따서 소금에 절였다가 햇볕에 말린 것은 백매(白梅), 소금에 절이지 않고 볏짚을 태워 연기를 쐬면서 말린 것은 오매(烏梅)라 하여 약용하였다.

매화의 효능과 기능을 보면 한방에서는 수렴(收斂)·지사(止瀉)·생진(生津)·진해(鎭咳)·구충(驅蟲)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성은 온(溫, 따뜻함)하고 산(酸, 신맛)하며, 해수(咳嗽)·인후종통(咽喉腫痛)·번갈(煩渴)·요혈(尿血)·변혈(便血)·혈붕(血崩)·이질(痢疾)·설사(泄瀉)·회충복통(蛔蟲腹痛)·구충증(鉤蟲症) 등에 치료 효과가 높다. 뿌리는 매근(梅根), 가지는 매지(梅枝), 잎은 매엽(梅葉), 씨는 매인(梅仁)이라 하여 약용된다. 또 매실은 식초로 쓰였다.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에는 오매를 볕에 말려 가루로 만들었다가 필요할 때 물에 타서 쓰는 매자초가 기록되어 있다.

요즘에는 매실을 소주에 담가 매실주를 많이 만들고 있다. 임원경제지에는 매화 꽃잎을 넣고 끓이는 죽도 소개되어 있다. 매화나무는 추위가 덜 가신 초봄에 꽃이 피기 시작하므로 봄소식을 알려주는 나무로 아낌을 받아왔다. 특히,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많이 재배하였고,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였다. 범석호(范石湖)는 매보(梅譜)에서 천하에 으뜸가는 꽃이라 칭하였고, 강희안(姜希顔)은 화목을 9품으로 분류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9등품론에서 소나무·대나무·연꽃과 함께 1품으로 분류하고 높고 뛰어난 운취는 취할만하다고 하였다.

매화나무는 흰꽃이 피는 것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으나 분홍꽃이 피는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흰매화라 부르며, 분홍꽃이 피는 것은 분홍매화, 꽃잎이 다섯 개보다 많은 것은 만첩흰매화·만첩분홍매화 등으로 구별하고 있다.

세상을 바꾼 나무 "봄을 알리는 매화"에 보면, 장미과의 갈잎 중간 키 나무인 매화는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는 다른 나무보다 꽃이 일찍 핀다. 그래서 매실나무를 꽃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화괴(花魁)’라 한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아울러 색에 따라 희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부른다. 우리나라 화가의 경우 대개 18세기까지는 백매를 선호했으나 19세기부터 홍매를 선호했다. 중국 양쯔 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를 음력 2월에 볼 수 있다. 그래서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매실이 가장 먼저 나오는 자료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이다. 매실은 신맛이 강하다. 신맛을 생각하면 입안에서 침이 돌게 마련이다. 중국 삼국시대 조조는 매실의 신맛을 이용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출병했다. 그런데 길을 잃어 군사들이 몹시 피로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자, 군졸들은 모두 갈증을 느껴 행군조차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조조는 큰소리로 군졸을 향해 “저 산을 넘으면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 여기서 열매를 따 먹자”라고 외쳤다. 이 말을 들은 군졸들은 매실을 생각하니 금방 입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 고사에서 매림지갈(梅林止渴, 매실이 갈증을 그치게 함)이 탄생했다.

선비들이 매화나무를 좋아한 이유는 추운 날씨에도 굳은 기개로 피는 하얀 꽃과 은은하게 배어 나는 향기, 즉 매향(梅香)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는 정당매(政堂梅)이다. 이 나무는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편찬자인 강희안의 조부인 강회백이 심은 나무이다. 정당매는 강회백의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일손은 정당매기(政堂梅記)를 남겼다. 지리산 자락의 단속사에 살고 있는 정당매는 600년의 세월을 견딘 탓에 키도 작을 뿐 아니라 죽은 가지도 적지 않다. 정당매 앞에는 매화를 심은 뜻을 기린 비석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김홍도는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왔지만, 김홍도는 돈이 없어 살 수 없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청하고 그 사례비로 3,000냥을 주자, 김홍도는 2,000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 그래서 이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한다.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사람인 한훤당 김굉필의 외증손이자 퇴계의 제자인 한강 정구는 자신의 고향 성주에 회연서원을 세우고 뜰에 매화를 심고 백매원(百梅圖)을 만들어 수양했다. 지금도 회연서원에는 이른 봄 만발한 매화를 볼 수 있다. 중국 남송시대 송백인이 편찬한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에는 매화그림 백 폭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백 폭 매화도를 백매도(百梅圖)라 불렀다. 한강 정구의 백매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범성대는 세계 최초로 매화나무에 관한 전문서인 매보(梅譜)를 편찬했다. 중국에서 매화가 문인화로 등장하는 것은 대략 북송시대이다. 선비들이 매화를 그린 것은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중국 북송시대 임포는 ‘매화 그림’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는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숨어 살았다. 그의 작품 산원소매(山園小梅)에 등장하는 시어(詩語)는 후대에 매화 그림의 단골 화제(畵題)가 되었다. 이때부터 달과 함께 그린 ‘월매도(月梅圖)’, 물가에 가지가 거꾸로 자라는 도수매(倒垂梅) 등이 유행했다. 경상북도 선산을 비롯해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중 매학정(梅鶴亭)도 임포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일본 사람들도 매화 사랑에서 뒤지지 않는다. 일본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는 매화 그림 중 에도시대 오카타 고린의 홍백매도 병풍(紅白梅圖屛風)도 유명하지만, 같은 시기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에도 백경(江戶百景) 중 하나인 가메이도 매화정원(龜戶梅屋敷)도 매우 유명하다. 특히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은 이 판화 그림은 반 고흐가 유화로 모사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매화에 얽힌 얘기는 아주 많지만 퇴계 이황의 유언 중 “매화 분재에 물을 주거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황과 같은 안동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베이징 감옥에서 죽은 이육사의 「광야」도 매화의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광야」

우리나라든 중국 남쪽이든 여름철에는 비가 오랫동안 내리는 장마 기간이다. 그래서 장마가 매실이 익을 무렵 시작하므로 장마를 매우(梅雨) 혹은 매림(梅霖)이라 한다. 또한 익은 열매 혹은 그때를 ‘황매(黃梅)’라고도 부른다. 황매는 중국 선종의 5대 조사이자 혜능의 스승인 홍인을 일컫는다. 그가 중국 후베이 성의 황매산에서 수도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소백산맥의 황매산도 불교와 관련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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