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매서운 날씨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가 지난 금요일(12월 18일) 잠깐 풀려다 어제부터 다시 추워졌다. 겨울 날씨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은 가운데 코로나 19까지 재확산 되고 있어 더욱 외출이 어려운 실정이다. 오늘도 쌀쌀했지만 약수터에서 물도 길러오고 운동도 할 겸,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는 뒷산을 올랐다. 자주 다니는 등산길 옆에 울타리로 늘어서 있는 댕강나무에 작은 별처럼 하얗게 피어 있던 꽃들이 시들지도 않고 그대로 탈색이 되어 버린 채 있어 보기에도 마음이 시렸다. 조금 더 올라가니 계요등 열매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겨울을 알리고 있는가 하면 그 옆에 철도 모르고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면 노란 개나리꽃 몇 송이가 피어 있었다.
늘 이맘 때면, 간혹 매화와 영춘화에 개나리꽃까지 철없이 몇 송이가 피어나 안쓰럽게 만들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개나리꽃이 그리 만들고 있다. 동지인 내일부터 다시 기온이 올라간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인데 어쩌자고 저렇게 피어나 보는 이의 애를 태우게 할까? 조금 더 나아가니 이번에는 새빨간 열매가 맺힌 것이 보여 다가가 보니 반쪽이 벌어진 구기자였다. 구기자나무는 사철 푸른 잎을 자랑하지만 구기자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수확을 하는데,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서인지 푸른 잎 아래서 숨어 붉은 열매를 바람에 언뜻언뜻 보이고 있었다. 겨울이 아무리 차갑다고 해도 자연은 순리대로 필 꽃은 피고 맺힐 열매는 그렇게 맺히는 것 같다.
쉬엄쉬엄 약수터로 가는 길을 재촉하면서 걸어가는데 오후가 되니 기온도 조금 올라 비록 뺨을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햇살은 따사로웠다.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싶어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 맑은 공기를 바로 느낄 수는 없었다. 코로나 19 사태 이전과 이렇게 달라진 삶이 불편하고 성가실 줄은 몰랐다. 산허리를 돌아올라 가는데 빛바랜 도깨비가시가 아직도 가시를 그대로 달고 서 있고, 그 옆에 역시 생기를 잃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한겨울 속에 보는 꽃과 풀들을 보면서, 겨울은 인생에서 노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꿈과 희망을 품고 새싹을 틔우던 봄, 무성한 잎과 꽃들로 정열을 불태우던 여름, 성숙한 결실로 풍요로운 가을,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겨울이기 때문이다.
산 능선에 올라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무엇인지 모를 정도의 배초향이 눈에 들어왔다. 늦가을에 한창 연보라색 꽃을 무리 지어 피우고 있어 아름답고 했었는데 그새 까맣게 잊고 지나쳤다. 또한 그렇게 곱던 쑥부쟁이도 고개를 떨구고 수수한 차림으로 서 있는가 하면 그 바로 옆에는 키 큰 개망초도 칼라에서 흑백으로 변장을 하고 서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세월이 이렇게 꽃과 풀들의 모습을 마음대로 변장을 시키는 요술을 부리고 있으니 사람이라고 달리 그 요술 앞에 당할 수가 있을까 싶어 씁쓸하게 웃었다. 이렇게 꽃과 풀들의 변화된 모습을 살피고 느끼다 보니 어느새 약수터에 이르렀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기고 있었다.
집에만 있었으면 집안 일로 바빴겠지만 잠시 시간을 내 약수터에라도 나들이를 하니 마음이 밝아지고 맑은 공기까지 마실 수 있어 기분이 상쾌했다. 거기에다 운동까지 하고 가면서 맑은 물까지 길러 가니 일석사조인 것 같다. 약수터에서 운동을 하면서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게 피어 있던 살살이꽃이 형체만 겨우 유지하고 서 있고, 초겨울까지 그렇게 기운차게 피었던 소국(小菊)과 꽃범의꼬리꽃 및 수국꽃마저 핀 모습 그대로 시들어 있어 인생무상을 실감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노란 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곱게 피어 반갑게 맞아주는 소국도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비록 겨울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 살피면 한겨울 속에서도 꽃과 풀들의 색다른 모습이 또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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