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에는 작년 못지않게 그리 큰 추위가 없어 올해도 매화가 다른 해보다 일찍 피지 않을까 예상은 했지만, 연말연시에 갑자기 강추위가 찾아와 한겨울에는 매화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여기고 있었다. 어제 양산 통도사에 들린 것도 유명한 자장매 나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해서 잠깐 둘러보았는데, 자장매는 아직 꽃봉오리조차 내밀지 않고 겨울잠에 푹 빠져 있는 듯 하였다. 그래서 가까운 동아대학교 교정에는 작년 초 이때쯤 분홍겹매화 몇 송이가 피어 있었던 기억이 나서 혹시나 해서 오늘 저녁 어둠이 짙어가는 시각에 산책 삼아 찾아가 보았다. 교정의 체육관 옆 오르막 길을 따라 올라가는 오른편에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는데, 먼저 그 매화나무부터 살펴보았다.
언뜻 보니 어둑어둑해서 그런지 매화는 보이지 않고 작은 꽃봉오리만 몇 개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스마트폰의 전등을 켜고 찬찬히 살펴보니 매화나무 가장 높은 가지 끝에 활짝 핀 매화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자칫하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워낙 높은 곳에 달랑 한 송이의 매화가 피어 있어 똑바로 볼 수 있는 방향을 잡으려고 해도 비탈진 곳이라 뒤뚱거리기도 했다. 겨우 자세를 잡고 한 송이 매화를 담으려고 하는데, 어두워서 우선 카메라 플래시를 자동으로 설정하고 초점을 맞춰 찍었는데, 근처 가로등 때문인지 플래시가 터지지 않았다. 다시 고정 플래시 모드로 바꾸고는 확대를 시켜 매화를 담았다.
용케 올해 처음 본 매화 한 송이를 담을 수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아쉽게도 그윽한 향기는 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백옥 같은 매화와 마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은 이미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윽한 향기는 절로 코끝에 다가오는 듯하여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비록 손가락이 시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지켜보면서 올해 처음 만난 매화 한 송이에 취해 있었다. 특히 밤에 보는 매화는 더욱 고혹적이고 색다른 멋이 있었다. 나선 김에 작년 이맘때 보았던 분홍겹매화도 틀림없이 피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하여 가보았는데, 실망스럽게도 분홍겹매화는 아직 미동도 않고 꽃봉오리조차 맺고 있지 않아 약간은 서운하였다.
그렇지만 강추위를 뚫고 고고하게 피어난 백매(白梅) 한 송이라도 감상할 수 있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에 겹다. 아무리 매서운 한파가 불어닥쳐도 봄은 굴하지 않고 매화를 앞세우고 만반의 채비를 갖추어 찾아오려고 길을 나섰음에 틀림이 없다. 일기 예보를 보니 다음 주 수요일부터 다시 강추위가 올 것이라고 하는데, 바로 전날인 화요일이 소한(小寒)이기 때문에 가장 추운 시기에 들어선 것 같다. 소한(小寒)과 이어서 오는 대한(大寒)만 넘기면 큰 추위는 지나가기 때문에 앞으로 20여 일만 지나면 매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렇게 매화는 혹한을 이기고 피어나는 반면에 겨울에 강한 꽃으로 알고 있는 애기동백꽃은 오히려 파리하게 시들어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매화 한 송이
손을 호호 불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무 끝에 홀로 피어난 매화 한 송이
방긋 웃으며
그윽한 향기로 맞아주니
닫혔던 마음까지 절로 열리고
벌써 봄이 아닌가 착각하게 만든 매화 한 송이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어찌 이리 철도 모르고
일찍 찾아왔느냐고 안쓰러워
발만 동동 구르게 하는 멋스런 매화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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