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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오늘을 위해/알아서 남 주나

어머니날에 관하여

by 감사화 2021.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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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5월 8일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어버이날이다.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노인들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행사를 해오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날’이 거론되어 1973년에 제정, 공포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서 ‘어버이날’로 변경, 지정하였다고 한다. 지금 기억해보니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어머니날이라 하여 어머니께만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것 같고, 그 이후에 어버이날이 되어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함께 달아드리고 기념했던 것 같다.

어버이날에는 각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와 조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하거나 효도 관광에 모시기도 하며, 기념식장에서는 전국의 시·군·구에서 효자·효부로 선발된 사람에게 ‘효자·효부상’과 상금을 수여하고, 이들에게 산업 시찰의 특전이 주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이날을 전후하여 ‘경로주간’을 설정하여 양로원과 경로원 등을 방문, 위로하고, 민속놀이 및 국악행사 등으로 노인들을 위로하며 노인백일장·주부백일장을 개최하여 어른 공경에 관한 사상을 높이려 했다는데, 최근 들어 다른 기념일도 마찬가지지만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어제 조선일보 오피니언에 [윤희영의 News English] '어머니의 날'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이 올라와 있어 함께 공유하려고 한다. 어머니날을 기리고자 처음 시작했던 미국의 애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어머니날의 원래 취지가 퇴색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나중에는 어머니날을 폐지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날이 너무 상품화 되어 진정으로 어머니를 기리는 날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런 운동까지 벌였다고 해서이다. 부모님의 은혜는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돈이나 좋은 선물로 대신할 수가 없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부모가 되고도 부모의 심정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늘 자식으로만 살려는 자식들이 간혹 보여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역지사지라는 말도 있지만, 자식의 부모의 마음을 살필 줄 알아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할 때라도 항상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고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도록 하는 자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애나 자비스의 바람처럼 내일 버이날은 부모님께 정성 담긴 편지라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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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영의 News English] ‘어머니의 날’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

윤희영 에디터  입력 2021.05.06 03:00 | 수정 2021.05.06 03:00

한국에선 5월 8일이 어버이날(Parents’ Day)이지만, 미국에선 ‘어머니의 날’은 5월 둘째 주 일요일, ‘아버지의 날’은 6월 세 번째 일요일로 구분돼 있다.

‘어머니의 날’에는 유별난 기원(odd origin)과 안타까운 사연(pitiful story)이 깃들어 있다. 미국의 애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in tribute to her late mother) 1908년에 만들었는데, 나중엔 이날을 폐지하려고 애쓰다가(try to abolish it) 요양원에서 자식도, 한 푼의 돈도 없이 사망했다(die childless and penniless in a sanitarium).

자비스는 이날을 남북전쟁 반전운동(anti-war campaign)과 가족 재회 운동을 벌였던 어머니를 추모하는 날이자, 어린이들에게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일깨워주는(remind children of their mothers’ dedication and love) 날로 삼았다. 그리고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게(be designated as an official national holiday)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leave no stones unturned).

하지만 의회에서 비웃음을 사며(be scoffed at) “그럼, 시어머니·장모의 날(Mother-in-Law’s Day)도 만들어야겠네”라는 농담과 함께 묵살됐다(be dismissed with the joke). 그러나 ‘어머니의 날’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5월 둘째 일요일을 지정해 어머니의 날로 선포하게 됐다(set aside and proclaim it as Mother’s Day).

자비스는 아들딸들이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손편지(hand-written letters of love and appreciation)를 전하며 기념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공장에서 찍혀 나온 카드와 초콜릿이 손편지를 대신하게 되자 크게 분노했다(be infuriated at them).

‘어머니의 날’ 상업화에 격분한(be incensed at its commercialization) 그녀는 카드 회사, 초콜릿 업체 등을 고소하고(take them to court) 저작권 침해라며 소송을 벌이기(sue them for copyright infringement) 시작했다.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등 물리적 행동에도 나섰다.

그러다가 업무 방해(obstruction of business), 재산권 침해(violation of property rights) 등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소송이 길어지면서 사업가 아버지와 택시 회사 대표 오빠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탕진했다(run out of all her inheritance).

1943년엔 ‘어머니의 날’ 폐지 탄원서를 돌리던(circulate a petition to have it abolished) 와중에 건강까지 급속히 나빠졌고, 이후 1948년 84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undergo treatment)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소문에 따르면, 요양원 비용은 카드·초콜릿 회사들, 꽃 재배업체들이 내줬다고 한다.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실일지라도 그것이 그녀를 요양원에 계속 가둬두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자신들에게 최고 수익이 되는 날(most profitable day)을 만들어준 데 대한 감사 표시(token of gratitude)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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