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볼 일이 있어 가는 길에 지난 시월 말 작은음악회에 초대 받아 다녀왔던 아홉산정원을 잠시 들렀다. 그 댁은 정년 퇴직한 뒤 살 집을 오랫동안 찾다가 마련한 곳으로, 지금은 완전히 정착을 하여 평안한 노후를 즐기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부부와 1시간 반 정도 담소를 나누었다. 아침은 올 들어 가장 추웠다는데 오후부터 따사로운 햇살이 거실까지 찾아들어서인지 기온이 올라 추운 줄을 몰랐다. 나란히 테이블 두 개를 놓고 각 테이블마다 두 개의 의자에 앉아 아홉산정원을 바라보면서 그간의 안부와 시골의 겨울 삶에 대한 이야기부터 세상 돌아가는 정황까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처음 의자에 앉아 거실 밖 정원 풍경을 음미하다 보니 창문 근처 화분에 핀 겨울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연분홍 장미꽃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장미꽃 가까이로 다가가서 보니 연한 분홍색으로 아름답게 핀 모습이 가련해 보이기도 하고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뒤섞이는 듯하여 혼란스러웠다. 속으로 "아니 철이 어느 때라고 피어나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럽게 만들면서 이리도 곱게 피는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만들까?"라고 말을 붙여 보았지만, 그냥 빙긋 웃는 것 같다. 그렇게 보고 있으니 바깥에 있는 것을 거실로 들여다 놓으니 겨울인데도 꽃이 피어났다고 하셨다.
자세히 살펴보니 가지를 알맞게 잘라주면서 언제라도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였다. 온실이 아닌 바깥에서 자라도록 그대로 둔 장미라면 지금쯤 앙상한 가지에 날카로운 가시만 잔뜩 달고 겨울을 나고 있을 텐데, 이곳 화분에 키우고 있는 아담한 장미는 주인의 정성스러운 관리를 받으며 계절을 초월하고 파릇파릇 잎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탐스러운 꽃까지 피우고 있으니 대견할 뿐이었다. 장미꽃은 세 송이가 피어나고 있었는데,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두 송이는 막 활짝 피어날 태세였고, 다른 한 송이는 아직 꽃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귀한 장미꽃을 보니 장미꽃이 되고 싶다.
장미꽃 화분 옆에는 붉은색과 분홍색 제라늄 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 있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켜 주었다. 제라늄은 거실에 두면 1년 내내 꽃을 피울 정도라서 관상용으로 아주 좋은 꽃이다. 제라늄도 겨울에 바깥에 두면 모두 시들어버리는데 화분에 심어 거실에 두니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어줘 마음까지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꽃은 어떤 꽃이라도 언제 어디서 봐도 눈이 먼저 가고 싫증이 나지 않는다. 특히 꽃을 흔하게 볼 수 없는 겨울철에 만나는 꽃은 더욱 귀하게 보이고 순식간에 마음까지 빼앗기는 것 같다.
겨울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꽃들을 보니 잠깐이었지만 "꽃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은 자식꽃일까 손주꽃일까?"란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았다. 사람과 꽃을 비교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해도 자식들(딸과 아들)을 키울 때의 그 모습들과는 견줄 수가 없지 않을까 해서이다. 아직 손주는 없지만, 자식들이 태어나 품 안에 있을 때는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 어리광을 부리고 보채다가도 방긋방긋 방실방실 웃는 그 모습은 정말 귀엽고 아름다웠다. 특히 낮잠을 자다가 혼자 빙긋 웃는 모습,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혼자 까르르 웃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이야 모두 장성하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처지이지만, 어릴 때의 일들을 생각하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 봤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간혹 할 때도 있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하면서 책꽂이에 꽂힌 사진첩을 꺼내 보기도 하면서 어릴 적 자식들의 모습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항상 자식들과 함께 하고 있고, 오래지 않아 손주꽃도 보는 행복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 귀한 장미꽃과 함께 제라늄꽃까지 보니 불현듯 어릴 적 자식꽃까지 떠올릴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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