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으로 하루가 다르게 차츰 빠져들고 있다. 섬돌 밑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구성진 노랫가락은 깊어가는 가을을 더욱 또렷하게 느끼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벌써 찬기운이 문밖에서 기다리다 창문이라도 열면 이내 거실로 들어서서 옷깃을 여미게 하고, 밤이면 따뜻한 온돌이 생각나고 두터운 이불을 꺼내어 덮어야 할 때가 되었다. 유난히 별나게 긴 장마도 푹푹 찌던 폭염과 열대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히고 맑고 높은 하늘과 선선한 가을바람이 자리를 대신하여 상쾌한 아침을 열고 있으니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이어지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애들 아빠(앞으로는 님이라고 부름)와 함께 승학산 약수터를 다녀왔다. 일주일에 서너 번 가는 편인데, 등산도 하고 약수도 길러오면서 운동까지 하면서 맑은 공기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과 들의 모습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십조(一石十鳥) 이상이다. 요즈음 "걸살누죽(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또는 "누죽걸산(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즉 "보생와사(步生臥死)"라는 말이 유행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많이 걷는 것이 최고라는 뜻에서 하는 유행어가 아닌가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과 같다.
사람의 몸은 과도하게 쓰지 않고 적당하게 움직이면 오래 유지되고, 꾸준히 단련을 하면 더 튼튼해지기까지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는 마음 관리 못지 않게 몸 관리가 중요하다. 오래 사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최상이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오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삶의 질이 더 충실해지기 때문에 서로 항상 배려하고 감사하면서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자세와 실천이 중요하다. 아침에 님과 함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만끽하면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고 기적이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약수터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개여뀌와 고마리가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고, 철도 모르고 피어난 산벚꽃도 여전히 피어 있으며, 억새도 보라색에서 흰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약수터에는 초여름부터 피고 지고 하는 살살이꽃이 한창이고, 파랑 나팔꽃과 꽃범의꼬리꽃 그리고 꽃무릇 금목서 등의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 깊어가는 가을을 함께 즐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골이나 도시나 어디에 살아도 가까운 곳에 오를 수 있는 산이 있고, 거닐 수 있는 산책로나 공원이 있으며, 찾아가 쉴 수 있는 강도 있으니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가을이라서 더욱 살아가는 많은 일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봄에는 만물이 소생한다고 부산을 떠는 바람에 마음이 들떠 있고, 여름은 비와 무더위 그리고 모기와 벌레들로 소란스럽고, 가을은 이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맑은 하늘과 어디 가나 풍성한 맛과 아름다운 단풍으로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겨울은 추위로 몸이 움츠려지고 눈으로 마음을 맑힐 수 있다. 어느 계절 하나 놓칠 수 없고 그냥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들이 넘쳐 난다. 아무리 바깥이 어지럽고 요란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고 해도 안은 늘 한없이 고요하고 편안하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나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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