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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오늘을 위해/살아가는 이야기

고추를 말리면서

by 감사화 2020.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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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시골 쪽으로 지나가다 보면 집 마당이나 시멘트 길바닥 위에 빨갛게 늘어놓고 말리는 고추를 쉽게 볼 수 있다. 햇살이 뜨겁게 내려 쪼이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텃밭에서 따온 고추를 말리는 일은 시골에 살아보면 연례행사나 다름이 없다. 고추 말리는 것만 보면 아름다운 시골 풍경의 한 장면이지만, 말린 고추가 나오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땀과 노력은 보이지 않게 된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보는 많은 일들을 보면 과정보다는 결과만 보는 경향이 많은데,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은 더 많은 가르침이 있고 경험을 할 수 있어 새겨볼 줄 알아야 한다.

말린 고추 하나가 만들어질 때까지의 과정을 보면, 먼저 고추 모종을 심기 전에 거름을 뿌리고 땅을 갈아 일군 뒤에 고추 모종을 심을 두둑(이랑)을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런 뒤에 고추 모종을 구입하여 40cm 이상의 간격으로 고추 모종을 심는다. 고추 모종을 심기 전에 포트에 물을 충분히 줘서 뿌리까지 물이 스며들도록 한다. 아직 전문적인 고추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고 집에서 먹을 정도만 재배하다 보니 비료나 농약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고추 모종을 심은 뒤에는 가물면 물을 주고, 고추나무 아래쪽의 잎도 따주며, 지지대를 세우고 끈으로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켜 준다.

그렇게 하면 고추는 꽃을 피우고 고추들이 열리기 시작한다. 보통 심는 고추는 일반 고추, 매운 고추, 꽈리 고추, 오이 고추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중에 어디에 어떤 고추를 심었는지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꽈리 고추와 매운 고추는 쉽게 구별이 되는데 일반 고추와 오이 고추는 구별을 못할 때도 있다. 보통 고추는 4월 말에서 5월 초에 모종을 심고 5월 말이 되면 날씨가 따뜻해져 하루가 다르게 자라게 된다. 고추 모종을 심고 4 ~ 5주가 지나면 풋고추를 수확할 수 있고, 조금씩 붉은 고추도 매달리게 된다. 최근에는 기온이 올라가서 더 일찍 수확을 하는 것 같다.

붉은 고추가 매달리면 보이는대로 따서 말리는데, 아파트에 살다 보니 고추 말리는 일이 여간 힘들지가 않다. 특히 장마철에 들면서 햇볕 나는 날이 거의 없어지면 아예 흙침대에 불을 넣고 붉은 고추에게 잠자리까지 양보해야 한다. 그렇지만 직접 재배하여 수확한 붉은 고추가 조금씩 말라가면서 검붉은 색으로 건조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다. 우리들이 살아가며 이루어가는 일들을 보면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고,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이 없다. 비록 사소한 붉은 고추 하나도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땀과 정성이 깃들여야 얻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년보다 많은 고추 모종을 심어서 그런지 10근(6kg)까지는 아니지만 김장을 담고 집에서 쓸 고춧가루 정도는 수확이 되지 않을까 한다. 지금도 아파트 베란다에는 붉은 고추를 서너 개의 소쿠리에 담아 말리고 있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고 따뜻하면 며칠 내로 자연광을 이용한 붉은 말린 고추가 만들어질 것 같다. 자연광으로 어느 정도 말린 붉은 고추는 꽃차를 덖는 건조기에 넣어 하루나 이틀을 완전히 건조해 완성을 시키고 있다. 붉은 고추를 말릴 때,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햇볕이 비치는 쪽으로 고추를 옮기는 일과 고추를 뒤집어 주는 일이다.

그렇지만 조금씩 말라가는 고추를 보면 마음의 눅눅한 기운이 함께 날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어릴 때 시골 집마당에 늘어놓고 말렸던 붉은 고추를 떠올리면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밭에서 따온 고추의 양도 많았고, 그것을 말리는 일도 여간 힘들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더 많이 거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고 아쉽기만 하다. 올해 붉은 고추 가격이 1근(600g)에 2만 원에서 3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다. 약 10근을 수확한다고 하면 20 ~ 30만 원은 번 셈이다. 이런 돈보다는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 무공해 고추로 김치는 물론 반찬을 만들 수 있어 행복하다.

<꽃차 덖는 건조기에 말리고 있는 붉은 고추>
<자연광인 햇볕에 말리고 있는 붉은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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