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봄비답지 않게 많은 비가 내렸다. 최근 들어 화창한 날이 없었고, 비도 자주 내려 봄을 맞는 치레가 마음만큼이나 무겁다. 오늘도 아침부터 잔뜩 흐리다가 잠시 햇살이 보이는가 했는데 다시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여름 날씨와 같이 변덕이 심했다. 그러다 보니 기온도 쌀쌀하여 두터운 점퍼를 벗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그새 5일장이 다가와 시장에 나갔는데, 지난번 5일장도 다른 날보다 쌀쌀했었다는 기억이 떠올라, 장날마다 날씨가 이런가 하는 별스런 생각까지 들었다. 비가 오기 전인 지난 일요일 뒷산에 올라 약수를 길어왔었는데, 얼마나 등산객들이 많이 다녔는지 산길은 먼지가 폴폴 일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다.
비록 날씨가 변덕스럽게 추웠다 포근했다를 번갈아가면서 온탕 냉탕으로 들락거려도 이미 와버린 봄의 기세는 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겨울 동안은 붉은 기운을 띠지 않았던 산딸기나무 군락이 불그스레한 빛깔로 변하였고, 찔레나무 가지의 새순부터 딱총나무, 국수나무, 진달래나무, 생강나무 등의 가지 끝에는 봄맞이 새순들과 꽃봉오리가 앞을 다투어 세상 구경을 나오기 직전의 봉긋봉긋 부풀어 올라 있었다. 딱총나무의 새순은 마치 꽃봉오리 같았고, 국수나무의 새순은 짙은 고동색으로 시작을 하였고, 진달래꽃도 빨리 찾아올 것 같았으며, 생강나무는 곧 터질듯한 꽃봉오리였다. 물끄러미 이들 새순과 꽃봉오리들을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이가 들어도 봄은 언제나 가슴이 뛰고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이 먼저 떠오른다. 아직도 날씨가 쌀쌀하지만, 어릴 때의 봄은 더 쌀쌀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두툼한 옷도 없고 신발도 고무신 뿐이었으니 차게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네 앞마당에는 궂은날이 아니면 언제나 동네 아이들이 모여 신나게 뛰어노는 소리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자유분방한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시골에 가보면 동네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어른들도 낮인데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 19의 영향도 있겠지만 어린이들이 있는 집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가임 여성의 합계 출산율이 0.84로 사상 최저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봄은 거침없이 산천을 휩쓸고 가는데, 찌푸린 날씨만큼이나 개이지 않는 삶의 봄은 좀처럼 올 생각을 않는 것 같다. 코로나 19로 5명 이상의 집합을 못하도록 하니 당분간은 서로 격리된 상태로 눈치만 보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문득 지하철이나 버스 및 열차(KTX나 SRT 포함) 등의 대중교통은 한 칸이나 한 대에 사회적 거리두기 및 5인 집합 금지가 적용을 하지 않는데, 여기는 왜 괜찮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행사에는 5인 집합 금지라는 잣대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것 같고, 모든 방송들이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는 트로트 가요제 역시 5인 집합 금지나 사회적 거리두기는 남의 일인 것 같은데 괜찮은 것일까? 왜 이런 이중적인 잣대로 국민들을 몰아갈까? 이런 의문을 가져도 안 되는 것일까?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두 말하지 말고 따라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인 나라의 주인이 해야 하는 도리이고 의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처음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왔던 지난해 1월 중순에 많은 전문가들과 국민들이 중국으로부터의 입국과 출국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외쳤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더 문제라고 했던 당국은 그 이후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어떻게 대응하면서 지금까지 끌고 왔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지금도 K-방역이 전 세계에서 최고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국민들이 주인이 아닌 것 같다. 거기에다 국민들이 낸 세금을 가지고 마음대로 나눠주면서 생색을 내고 있는데 이 엄청난 공돈은 모두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빚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러니 봄이 왔지만 봄을 느끼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뜻이다. 산과 들에는 새싹과 새순들이 한순간이 다르게 봄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사람들만 아무런 변화도 없이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를 앞세운 아집과 독선을 일삼으며 속고 속이는 투전판에다 난장판이 겹쳐 일어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도나 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고 사람이 화근이었는데, 수 천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삶은 전혀 변화를 거부하면서 약육강식의 동물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욱 수법이 야비하고 악랄하기까지 하여 혀를 내두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서운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는데도 봄을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고 더욱 소름이 끼쳐 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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