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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오늘을 위해/알아서 남 주나

최초의 한글 요리서 '음식디미방'

by 감사화 202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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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에 영양군 두들마을에서 진행한 장계향(張桂香, 1598~1680) 선생의 음식디미방 체험 아카데미(제15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 전에는 장계향 선생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좋은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 대해 알아볼까 한다. 요즈음처럼 코로나 19로 외식을 자제해야 하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집에서 순수한 우리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그런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주제를 잡아보았다.

<두들마을 입구>

음식디미방은 1670년(현종 11년)경에 정부인 안동 장씨라 불리던 장계향 선생이 지은 우리나라 음식을 다룬 최초의 우리말(한글) 요리서(飮食知味方)로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라고도 한다. 장계향 선생은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선생의 적통이라고 하는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선생의 무남독녀이다. 뒤에 부친이 아끼는 제자였던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선생이 일찍 상처를 하자 딸인 장계향 선생과 연을 맺어주어 부부가 되었고, 전처 소생 1남 1녀와 자신이 낳은 6남 2녀, 모두 7남 3녀를 훌륭하게 키워내셨다고 한다.

<장계향 선생 영정>

장계향 선생의 계향(桂香)은 소식(蘇軾)의 적벽부에서 따왔다고 한다. 만년에 셋째 아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대학자이자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부여하는 산림(山林)으로 불림을 받아 이조판서를 지냈기 때문에 정부인(貞夫人)의 품계가 내려졌고 이때부터 '정부인 장씨'라 불리게 되었다. 한시에도 능해 10대 초반에 학발첩(鶴髮帖)과 성인음(聖人吟) 및 소소음(蕭蕭吟) 등을 지었다고 한다. 요리서 원본 표지에 적힌 책이름은 음식디미방이 아니라 규곤시의방(方)인데, 그 당시도 한글보다 한문 책이름이 더 격조가 높다고 여겨 남편인 석계 이시명 선생이 직접 적어주었다고 한다.

정리하면 책의 표지명은 "규곤시의방(方)"이고, 권두명은 음식디미방으로 되어 있어 서로 다르다. 책은 앞뒤 표지 2장을 빼면 모두 28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 6장은 백지이다. 규곤시의방의 '규곤(閨壺)'은 여성들이 거처하는 공간인 '안방과 안뜰'을 뜻하고, '시의방(時議方)'은 '올바르게 풀이한 방문'이라는 뜻이라서 '규곤시의방'에 함축된 의미는 '부녀자에게 필요한 것을 올바르게 풀이한 방문'이라 할 수 있다. 음식디미방은 한자로 쓰면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으로 '디'는 알 지(知)의 옛말이며, 제목을 풀이하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문(方文)'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한다.

<음식디미방의 표지(출처 : 음식고전)>

그리고 책표지의 안쪽 면에는 당나라의 시인인 왕건(王建)의 한시인 신가랑사(新嫁娘詞) 삼수(三首) 중 세 번째 작품이 적혀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건의 한시(출처 : 음식 고전)>

新嫁娘詞3(신가랑사3)

-시집온 새댁의 시- 왕건(王建 : 768년 ~ 830년, 中唐 시인)

房(삼일입주방) 시집 와 사흘 만에 부엌에 들어

湯(세수작갱탕) 손을 씻고 국을 끓이지만

性(미암고식성) 시어머니 식성을 물라서

(선견소고상) 시누이더러 먼저 맛을 보게 하네.

그리고 음식디미방의 마지막에는 "이 책을 이렇게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절대로 내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빨리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말아라."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정확히 언제 썼는지는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장계향 선생이 말년에 쓴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대략적으로 1670년경부터 1680년 사이일 것이라고 본다고 한다. 음식디미방의 내용은 모두 한글로 적혀 있는데, 총 146 가지 음식에 대한 조리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내용은 3 가지로 구분하여 면병류(麵餠類)가 18 가지(3쪽 ~ 9쪽), 어육류(魚肉類)가 74 가지(9쪽 ~ 30쪽), 주류(酒類) 및 초류(醋類)가 54 가지(31쪽 ~ 46쪽)로 구성이 되어 있다.

<선생의 당부의 글(출처 : 음식고전)>

다음은 음식고전(2016. 10. 17., 한복려, 한복진, 이소영)에 나오는 음식디미방[閨壺是議方]에 관한 내용이다.

책의 개괄적인 구성은 면병류와 어육류를 포함한 전반부와 ‘주국방문’이라 하여 술과 식초를 다룬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 뒷부분에 각각 아무것도 쓰지 않은 종이 3장씩을 두어서 쉽게 구분이 된다. 이 여분의 종이는 추가로 음식 조리법을 적으려고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모두 146종의 음식 조리법이 수록되었다. 전반부에는 국수와 만두, 떡, 과자 등 곡물 음식이 포함된 면병류(麵餠類) 18종, 어육류로 분류한 음식 37종, 따로 분류한 용어는 없지만 채소 음식과 식품 저장법 20종과 맛질방문이라고 표기된 음식 17종이 있다. 후반부에는 51종의 술 양조법과 3종의 식초를 담그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 등장한 발효떡인 상화(霜花)의 구체적인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으로 설명되었다. 지금의 다식 만드는 법과 달리 오븐에 굽듯 기왓장에서 굽는 다식법도 소개되어 있다.

다양한 육류 조리법도 나오는데 개장꼬지느르미, 개장국느르미, 누런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 다양한 개고기 조리법이 적혀 있고, 당시에도 귀했을 법한 재료인 곰 발바닥을 이용하는 웅장 조리법과 훈연에 의한 고기 저장법도 소개되어 있다.

『음식디미방』에는 느르미로 대구껍질느르미, 개장꼬지느르미, 개장국느르미, 동아느르미, 가지느르미가 나온다. 이 시대의 느르미는 재료를 익혀 꼬치에 꽂고 밀가루즙을 걸쭉하게 만들어 끼얹는 조리법이었다. 1800년대부터는 이런 느르미가 사라지고 재료를 꼬치에 끼워 밀가루와 달걀 물로 옷을 입혀 지지는 누름적으로 바뀐다. 이 책에 수록된 잡채도 여러 가지 채소를 볶아 밀가루와 된장을 푼 즙에 버무리는 것으로, 지금의 당면이 들어가는 잡채와는 많이 다르다.

마른 해삼, 마른 전복, 자라, 꿩, 참새, 곰 발바닥 등 오늘날 흔히 쓰이지 않는 재료들의 손질법이나 조리법도 많이 등장한다. 고추가 식재료로써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이전 시기여서 고추가 쓰이지 않았으며, 매운맛을 내는 조미료로 천초와 후추, 겨자 등이 사용되었다.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내려온 비법, 맛질방문

본문 속에는 음식명 아래 ‘맛질방문’이라고 표시한 음식 17 가지가 나온다. 맛질방문은 맛질 마을의 조리법을 말하는데 맛질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은 여러 곳이 있다. 그중 장계향과 연관이 있는 곳은 외가 안동 권씨 집성촌인 예천의 맛질과 봉화의 맛질인데, 장계향 부모의 족보나 행적을 추적해나가다 장계향의 외가가 봉화의 맛질(지금의 경북 봉화군 명호면 일대)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봉화의 맛질은 음식 맛이 좋은 고을이라는 뜻의 ‘미곡(味谷)’에 유래를 두고 있어 『음식디미방』에서 말한 맛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음식 설명에 붙은 ‘맛질방문’이란 표시는 그녀의 외가나 친정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음식 조리법을 소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딸들에게 이 『음식디미방』의 내용을 베껴 가라고 당부했으니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내려온 비법은 아마 시집 간 딸들에게도 이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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