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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풀 그리고 차/꽃과 풀

만발한 매화를 보니

by 감사화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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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에 처음 백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한 달 사이에 백매(白梅)가 만발하여 화사하고 기품 있고 청아한 자태와 취할 것 같은 그윽한 향기로 봄을 앞당기고 있다. 입춘(立春)이 지나자마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봄으로 가는 길을 훼방 놓는가 했는데, 그것도 잠시 오늘은 봄날 같았다. 오전에는 5일 장을 보러 나갔는데 설 명절 연휴가 끼여서 한 번 장을 쉬어서 그런지 아니면 날씨가 풀려서 그런지 장을 보러 나온 인파가 대목 장날 못지않았다. 오후에 잠시 교정을 산책하고 왔는데, 어제와는 전혀 다른 포근한 기온에 산과 들의 땅속과 나뭇가지에서 꿈틀거리는 새싹과 새순들의 용트림이 더욱 가까이서 들려오는 듯하다.

이렇게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서 어리광을 부리며 빨리 봐주고 품어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데, 여전히 두터운 옷을 껴입고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움추리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즉 "봄이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라는 표현처럼 그렇게도 기다리던 계절의 봄이 찾아와도 마음속의 기다리는 봄은 아직 느끼지 못하는 상태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며칠 전에 텃밭의 파란색을 띤 봄까치풀꽃과 연분홍인 광대나물꽃도 피어나 매화와 함께 봄을 맞는 꽃과 나물들의 행렬이 곧 줄을 이을 것 같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밀어닥칠 봄 물결이 눈에 선하여 벌써부터 숨이 가빠지고 마음이 들뜬다.

매화는 낮이면 낮, 밤이면 밤, 언제 보아도 고매하고 매혹적이어서 왜 퇴계 이황 선생이 그토록 매화를 좋아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한 달 사이에 활짝 피어난 백매(白梅)를 보면서 그 아름답고 고혹적인 자태에 홀리고, 그 향기로운 향기에 취하여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매화나무 주위를 서성거렸다. 아직은 매화 꽃잎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온전하여 계속 이대로 피어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얼마 있지 않아 찬기운이 물러갈 때쯤이면 서서히 하얀 꽃잎들이 봄바람을 타고 눈처럼 떨어질 것이다. 미리 매화의 낙화를 슬퍼하는 것은 앞당겨 시름을 가불 해서 마음고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앞날로 달려간다.

<교정을 오르는 길 오른편에 홀로 서 있는 백매나무>
<잔뜩 흐린 날씨에도 화사하게 핀 백매>
<눈이 부시게 활짝 피어난 백매>
<가지마다 주렁주렁 꽃송이 매달고 있는 백매나무>
<조화를 이운 활짝 핀 매화와 탐스럽게 맺힌 꽃봉오리>
<기품있고 도도하기까지 한 백매>
<흐드러지게 핀 백매>
<여유롭게 봄을 즐기고 있는 백매>
<봄이 왔음을 알고 있는 백매>
<보기만 해도 코끝에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백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청아한 백매>

하얀 꽃송이 속에 샛노란 꽃술이 사이좋게 모여 더욱 꽃잎을 돋보이게 하는 매화 한 송이 한 송이마다 봄을 향한 꿈과 어려움을 견디고 불굴의 기개를 한껏 느끼게 한다. 거기에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코끝이 꽃송이 쪽으로 향하게 하는 그윽한 향기는 감히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것 같다. 조선 후기 문인이며 실학자였던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 1720년 ~ 1783년) 선생의 매(梅)라는 한시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 한시에 보면 매화 향기를 맡아도 향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선생의 몸까지 매화 향기가 흠뻑 베인 것 같다는 표현이 어떤 상태인지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다음은 월암(月巖) 이광려 선생의 한시 매(梅)를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한다.

(梅)

-매화-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

滿戶影交脩竹枝(만호영교수죽지) 방문에 대나무 그림자 길게 드리워 가득 차고
夜分南閣月生時(야분남각월생시) 밤은 깊어 남쪽 누각에 달이 휘영청 떠오른 때

此身定與香全化(차신정여향전화) 이 몸 정녕 그 향기에 흠씬 물이 들었음인가?
嗅逼梅花寂不知(후핍매화적부지) 매화에 다가가 향기 맡아도 향기를 모르겠구나.

밤은 깊어 방문에 대나무 가지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달까지 밝게 휘영청 떠오른 때에 바깥으로 나가 활짝 피어 있는 매화를 보고 향기를 맡으려고 코를 매화 가까이 대보았지만 전혀 향기가 나지 않는다. 그 연유는 이미 자신의 몸까지 매화 향기로 흠뻑 물들어 있어서라고 이렇게 시(詩)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어떤 매화 꽃송이라도 가까이 코만 갖다 대면 바로 코끝을 찌르는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매화 향기가 온 집안 구석구석까지 가득 차고 미쳐, 자기 몸마저 매화 향기로 완전히 흠씬 물이 들었기 때문에 코를 바짝 매화에 갖다 대어 보았지만 전혀 그 향기를 알 수가 없다고 적은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멋진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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