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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오늘을 위해/소소한 행복

4월이 가는 날

by 감사화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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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월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욱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자꾸 먼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다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올해도 1/3이 지나가고 있다. 남은 2/3는 지난 1/3보다는 더 알차고 보람있는 날이 되기를 먼저 소망해 본다.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지만 사람들의 삶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별만 달라진 것이라고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사는 삶이 너무 바빠서 그런지 자신이 자신만의 삶을 오롯하게 살지 못해서 그런지, 언제나 허둥거리며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 나아가 사실과 다른 가식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뻐기고 속고 속이며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데도 모두 잘 나 지내는 것 같아서이다.

아침에 언뜻 아무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단촐하게 간식만 챙겨 집을 나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을 나서 그저인 지하철부터 탔다.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하고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렸다가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가면 그만이라 여겼다. 그러니 바쁘게 우왕좌왕할 일도 없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내가 가고 싶은대로 가면 되기에 홀가분했다. 왜 진작 이런 나들이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뭘하는지도 아무런 느낌 없이 보았다. 대부분 스마트폰에 눈을 꽂고 손가락을 열심히 누르고 밀고 당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말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어쩌고들 살까?

지하철도 가는 세월만큼 빨리 달려 벌써 종착역인 노포동이라고 안내 방송이 들렸다.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계단을 올라 바깥으로 나오니 부산종합터미널이라는 간판이 보여 그쪽부터 들어가봤다. 일요일인데도 시외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거이 없어 한산했고 대기석에는 뛰엄뛰엄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창구에 가서 버스 시각표가 있으면 한 장 달라고 하니 예전처럼 멋지게 인쇄된 것이 아닌 A4 용지에 복사한 것을 줬다. 어디로 타고 갈 곳도 없으면서 다음을 위해 한 장 챙긴 것이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오시게장(2일과 7일에 선다는노포동의 5일장 이름)이나 둘러보자며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2일도 7일도 아니기 때문에 장이 설 리가 만무하지만 혹시 쓸만한 모종이라도 있으면 몇 가지 살까 해서 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길가에 화훼단지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거기에는 온갖 꽃들과 지금 심을 채소 모종(고추, 가지, 케일, 오이, 호박, 수박, 파프리카, 브로클리, 양배추, 옥수수 등)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고추와 가지 및 오이와 참외 그리고 수박까지 이미 농협에서 구입했기 때문에 파프리카와 양배추 그리고 애플 수박과 딸기 모종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내친김에 금정산성 마을 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금정산성은 범어사쪽으로 오르는 것보다는 온천장쪽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온천장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거기서 203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만에 동문으로 오르는 곳에서 내렸다. 등산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적하고 날씨까지 좋아 등산하기에 아주 좋았다.

<꼭 가을 같은 분위기의 동문>
<동문 옆에 아름답게 핀 철쭉꽃>

동문을 지나 3망루쪽(1.7km 거리)으로 길을 잡고 느긋하게 걸어가는데, 철쭉꽃은 이미 지고 있었지만 신록이 짙어가는 4월 마지막 날의 금정산은 정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간히 목청 높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지나가는 등산객중에는 트로트의 볼륨을 높여 놓아 귀에 거슬리기는 했어도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3망루로 가는 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걷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3망루쪽을 향하면서도 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무데나 앉아서 쉬었고, 쉬는 것도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으니 얼마를 쉬어도 누가 간섭조차 없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어디 가나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이 업(?)이었섰는데 홀가분하게 혼자 산행을 하니 이런 기분도 있구나 싶어 좋았다.

<동문 앞에 서 있는 이정표>
<3망루 가는 길에 만남 바위>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고 있는 흰철쭉꽃>
<3망루가 보이는 곳에서 본 바위>
<마치 하회탈을 얹어놓은 것 같은 바위>

꼭 3망루까지 가지 않아도 상관이 없으니 가다가 내키지 않으면 곧바로 돌아내려 오면 그만이었다. 3망루가 멀리 보이는 곳에서 잠시 3망루도 바라보고 또 산 아래 동서남북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즐기며 그늘진 큰 바위 위에 자리를 깔고 금정산 정기를 느껴 보기도 했다. 가끔 지나가는 연인들, 가족들, 혼자 무거운 베낭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고 가는 사람, 친구들과 왁자지껄 요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여인네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모두들 4월이 가는 날인 줄은 알고나 있을까 중얼거리기도 했다. 누군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4월은 신록의 계절 한복판에 있는 산과 들이 가장 아름답고 활기 넘치는 달이 분명하다. 단 하루가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혼자만의 호젓한 시간을 가진 4월 끝날은 행복했다.

<멀리서 바라본 3망루와 능선>
<해운대쪽의 전경>
<김해쪽의 전경>
<화명동쪽으로 걸어내려 오면서 만난 오동나무꽃>
<향긋한 향기를 선물한 아카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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