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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을 찾아서

갓바위 부처님을 찾아서

by 감사화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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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다녀오던 팔공산 관봉 갓바위(보통 관봉에 자리하고 있는 갓바위 부처님을 일컫는 말)를 거의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는 집 근처로 지나가는 전세 버스가 있어 미리 예약을 하면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었는데,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그 전세 버스가 얼마 전까지 운행을 하지 않아 애들 아빠를 졸라 몇 번 다녀온 것이 고작이었다. 지난 일요일 시간을 내어 첫째와 함께 고향 선산 성묘를 겸해서 갓바위를 올 들어 처음으로 다녀왔다. 마침 날씨도 좋고 자가용을 타고 가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더 좋았다. 전세 버스로 가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갓바위 일주문을 지나 갓바위 입구 쪽에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서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 108배를 하고는 약사암으로 서둘러 내려와야 해서 시간적으로 빠듯했는데, 개인적으로 가니 그러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갓바위를 갈 때마다 관봉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 입구까지 구씨네식당 아저씨가 봉고차로 태워주셨는데, 다리를 다쳐 입원하셨다고 하여 봉고차 운행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직접 뒤편의 약사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평소와는 거꾸로 관봉에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갓바위 부처님은 팔공산 관봉 정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계신데, 부산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여 부산 사람들의 소원을 잘 들어주신다는 소문이 나 있어 부산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들 한다. 관봉은 해발 851m로 대구광역시 동구 진인동과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이곳 관봉 정상에 암석이 갓을 쓴 것처럼 넓은 판석이 갓을 쓰고 있는 형태라 하여 유래된 이름으로 갓바위라고도 불린다. 특히, 이곳에는 자연 판석을 쓰고 있는 암석을 조각하여 불상을 조각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갓바위 부처님인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431호]이다.

집에서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 느긋하게 출발하여 구씨네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약사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시간이 오후 1시였다. 휴일이라서 그런지 등산객과 참배객들이 보통 때보다 많은 것 같았고, 그 시간에도 주차장은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 용케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가 있어 그 자리에 주차를 하고는 먼저 약사암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길은 날아가듯 걸었는데, 그새 무릎이 시큰거리는 증상이 와 오르막은 물론 내리막을 걷는 것도 이전과 같지 않다. 첫째는 약사암 관세음보살님께 작년에 팔았기 때문에 약사암까지만 가는 것으로 하고, 애들 아빠와 함께 관봉 갓바위 부처님 쪽으로 길을 잡아 올라갔다. 완연히 풀릴 기온으로 가볍게 차려입었는데도 숨이 차면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약사암에서 관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아직 봄꽃이나 새순이 보이지 않았다.

<약사암으로 오르는 길 옆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돌탑>

20여분이 걸려 갓바위 대웅전에 도착하였다. 보통 때와는 달리 반대편으로 관봉에 올랐기 때문에 일주문이 있는 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우선 용왕각, 칠성각, 산신각에 들러 향과 양초를 피우고 쌀을 올리고 삼배를 한 뒤 다시 대웅전에 들러 참배를 했다. 이어 3층 석탑을 돌며 가정의 행복과 안녕 그리고 가족들의 건강과 발전도 축원하면서 나라도 안정 되고 국민들도 평안하게 살기를 빌었다. 그리고 나서 관봉 정상으로 올라가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 다시 참배를 하면서 축원도 했다. 애들 아빠는 매일 밤 108배를 하는데, 오늘은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 108배를 하고 있었다. 애들 아빠가 108배를 하는 사이에 유리광전에 들려 참배를 하고 왔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갓바위에 왔기 때문에 애들의 연등 부탁도 하면서 1년 축원비까지 마무리를 짓고 나니 한결 마음이 홀가분했고, 관봉에서 하양읍 쪽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했다.

<탑돌이를 한 3층 석탑>
<관봉 입구쪽에서 바라본 갓바위 부처님>
<갓바위 부처님에 관한 안내판>
<정면에서 본 갓바위 부처님>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듯 앉아 수심에 잠긴 듯한 갓바위 부처님>
<관봉에서 내려다 본 하양읍 방면>
<관봉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본 동봉 가는 산 능선>

오늘따라 갓바위 부처님이 계신 곳까지 힘들게 올라서 그런지, 갓바위 부처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찬 것 같아 되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이전에는 갓바위 부처님 앞에 올 때까지는 어떤 마음 상태였어도 갓바위 부처님을 친견하고 나면 봄눈 녹듯이 모든 근심과 걱정들이 사려지고 맑고 밝은 마음이 되어 돌아갔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아서이다. 모두 내 마음의 번뇌와 망상이 더 깊고 많아서 그런 마음이 갓바위 부처님 얼굴에 비쳐져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미세먼지 때문이지 뿌연 하늘 아래로 펼쳐지는 봄날의 관봉 아래 풍경은 세파에 찌든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게 관봉에서 갓바위 부처님을 뵙고는 다시 약사암으로 내려와서 관세음보살, 용왕당, 산신각을 차례로 들러 삼배를 올리고 오랜만의 갓바위 참배길을 마무리하고는 고향 선산으로 향했다.

<약사암의 관세음보살상>
<산신각의 절벽에 새겨진 산신상>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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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사(http://www.seonbonsa.org/)는 경상북도 외촌면 대한리 547번지에 소재하는 대한 불교 조계종 직영의 사찰로, 이곳은 선본사라는 사찰 이름보다는 동쪽의 관봉 정상에 있는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팔공산은 대구광역시와 경북 군위군, 경산군, 영천군, 칠곡군에 걸친 높이 1,192m의 명산이다. 팔공산은 빼어난 산세와 풍광으로 일찍부터 경북의 영산(靈山)으로 알려져 왔고, 지금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신라 불교의 초전(初傳)이 이루어졌던 일선군이 바로 오늘날 팔공산 아래에 있는 경북 선산군이다. 한국 불교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팔공산에는 이후 많은 승려가 주석(住錫)하고 사찰이 자리를 잡으면서 명실공히 신라 불교의 생생한 역사가 전개되었다. 지금도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동화사(桐華寺), 은해사(銀海寺), 송림사(松林寺) 등의 사찰과 제2석굴암이라 불리는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 그리고 관봉의 갓바위 부처님 등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선본사는 신라 소지왕 3년(491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였고, 그 뒤 선덕여왕 7년(638년)에 의현스님이 관봉(850m)의 약사여래좌상(갓바위 부처님)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관봉 아래에는 칠성각, 산신각, 용왕각을 비롯하여 요사 몇 채가 있다. 이 전각들은 주로 갓바위 부처님의 봉안을 위해 세워진 것들인데, 선본사에서는 말하기 편하고 듣기 쉽도록 흔히 밑에 있는 선본사를 '본절'이라고 하고, 갓바위를 '웃(윗)절'로 부르고 있다. 웃절은 갓바위 부처님을 찾는 신도가 많은 탓으로 규모가 대단하여, 요사채만 하더라도 식당으로 쓰이는 삼층 건물을 포함해서 전부 6동, 그리고 기타 건물도 6동이나 되어 오히려 본절을 능가한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851m에 달하는 이곳 관봉의 약사불을 친견하러 온다고 한다. 그들은 제각기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또 약사 신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개인적인 소망을 빌기도 하는데, 입시철이 되면 참배할 자리 잡기도 어렵다고 한다.

약사불(略史佛)이란 동방의 정유리세계(淨流璃世界)에 머물며, 중생의 질병고를 치료하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다. 이 부처님은 12 가지의 큰 원(願)을 세워, 중생들의 온갖 고통을 소멸시킬 것을 맹세하였는데, 특히 중생의 질병에 가장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여섯 번째의 '일체의 신체 장애자로 하여금 그 장애가 완전히 회복되도록 하는 서원'과 일곱 번째의 '온갖 질병을 모두 없애고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도록 하는 서원'이 약사불을 대표하고, 또 이 기능이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중생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부처님)은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冠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관봉이 곧 우리말로 '갓바위'이므로 흔히 '갓바위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또 머리에 마치 갓 같은 판석(板石)이 올려져 있기에 그렇게도 부른다.

갓바위 부처님은 절에서 전하는 바로는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수제자인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체적 양식으로 보아 8 ~ 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현재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특히 갓바위 부처님이 경남, 울산, 부산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여 이 지역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다고 한다. 갓바위 부처님은 화강암 한 돌로 만든 것인데, 몸뿐만 아니라 대좌 역시 한 돌로 되어 있다. 불상의 광배(光背)는 없지만 뒤쪽에 마치 병풍을 친 듯 기다랗게 바위가 둘러져 있어 혹시 이 자연 바위를 광배로 삼았기 때문에 따로 광배를 만들지 않았다고 본다.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고, 그 위로 두께 15cm 정도의 흡사 갓 모양을 한 얇은 바위가 얹혀져 있다. 바위 아랫면에는 육계에 맞닿는 곳에 둥근 구멍을 파서 육계에 맞도록 하였으며, 윗면 가운데는 같은 식의 둥근 구멍을 도드라지게 하고 그 주위에 화판(花瓣)을 조각하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인공적 조각임을 느끼게 한다. 얼굴은 양쪽 볼이 두툼하게 되어 있는 등 비교적 둥글고 풍만한 편이다. 입술은 굳게 다물어 대체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목구비가 조화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이마 한가운데는 백호(白毫)가 둥글게 솟았고, 오뚝한 코 아래의 인중도 두드러지고 있다. 두 귀는 길게 양쪽 어깨까지 늘어졌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두 어깨는 반듯하고 넓어 당당한 신체와 잘 어울리고 있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고 있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비슷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이 수인은 석굴암(石窟庵) 본존불의 그것과 동일한 양식으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왼손은 결가부좌한 왼쪽 발 부근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해 약합(藥盒)을 올려놓았다. 불상에 표현된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인데 두 팔을 거쳐 두 무릎을 덮고 대좌 아래로 흘러내려 있으며, 불의의 옷 주름을 표현한 선각(線刻)이 매우 유려하다.

그리고 가슴 앞에는 속옷의 일종인 승가리(僧伽梨) 혹은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보이고, 불상의 뒷면에는 옷의 표현이 없고 그냥 평면으로 되어 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은 편이며, 대좌 윗부분에는 길게 입은 옷의 끝자락이 덮고 있는데, 이 같은 대좌 형식을 상현좌(裳懸座)라고 한다. 이것은 팔공산 부근에 있는 군위 삼존석불의 가운데 본존불의 대좌 형식과도 유사하다고 한다. 이 불상의 학술상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며, 이름에서 굳이 약사불인 것을 밝히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이 부처님의 명칭에 대해 미륵불, 아미타불 등 이론(異論)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왼손에 보면 약합이 있는 것이 뚜렷하고, 옛날부터 이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약사여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손위의 약합이 분명한 이상 앞으로는 약사여래로 부르는 것이 옳을 듯하다고 한다. 현재 갓바위 부처님 앞에는 약 80평가량의 넓다란 참배터가 마련되어 있고, 바닥에 돌이 깔리고 주위에는 철제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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