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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을 찾아서

연초록의 봄날 찾은 쌍계사(雙磎寺)

by 감사화 202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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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나들이의 둘째 날 아침(4월 12일), 아름답게 피었던 벚꽃이 지고 비수기로 들어서서인지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찾은 쌍계사 매표소 앞에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너무 오랜만에 천년 고찰을 찾아서인지 당연히 65세 이상이면 무료입장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매표소에서 올해부터 무료입장은 70세로 나이가 상향되었다고 하여 일행 모두 어리둥절했다. 숙소를 나설 때는 일행 중 한 명만 입장료를 내면 되겠다고 여겼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한 명 당 2,500원의 입장료를 낼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차량에 대한 주차료는 없었다. 비록 벚꽃은 졌지만 연초록 새순들이 생기 발랄하게 돋아나는 기운을 한껏 받으며 지리산 자락의 삼신산(三神山) 아래 자리 잡은 쌍계사 일주문 쪽으로 향했다.

<쌍계사 종합안내판>

쌍계사는 여러 번 왔었기 때문에 낯설지가 않았다. 다른 사찰들에 비해 쌍계사의 일주문(一柱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은 아담하고 소박한 것 같았다. 돌다리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金剛門, 금강역사를 모시고 불법을 수호하면서,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를 가진 문)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타나고 금강문을 지나면 천왕문(天王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들인 사천왕을 모신 문)이 차례로 맞아주었다. 천왕문에 들어서 사천왕께 배례를 하고 안쪽으로 들어서니 9층 석탑이 팔영루 앞에 버티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반겨준 일주문>
<금강역사를 모신 금강문>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
<연등에 둘러싸인 9층 석탑>

쌍계사는 규모면에서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닌 것 같았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도량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고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전각들 간의 거리도 멀지 않아 관람하기에는 아주 좋은 것 같았다. 다음의 가람 배치도에서 알 수 있듯이 계곡을 경계로 왼쪽의 금당 영역(舊位)과 오른쪽의 대웅전 영역(新位)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쌍계사에 의하면 崇禎 연간(1628~1644)의 중창 이후 진감국사에 의해 이루어진 금당 영역과, 벽암각성스님에 의해 중창된 대웅전 영역의 두 공간으로 분할되는 독특한 가람 구성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즉 청학루 · 팔상전 · 금당으로 이어지는 금당 영역과, 일주문 · 팔영루 ·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대웅전 영역이 그것이라고 한다. 

<쌍계사 가람 배치도와 쌍계 석문(출처 : 쌍계사 홈페이지)>

쌍계사 홈페이지에 있는 쌍계사(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종무소 : 055-883-1901) 소개를 그대로 옮긴다.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9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대웅전 삼세불탱-보물1365호, 대웅전 목조 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 제1378호, 쌍계사 괘불-보물 제1695호, 쌍계사 감로왕도-보물 제1696호, 쌍계사 동종-보물 제1701호) 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적묵당, 설선당, 육조정상탑전, 팔상전, 사천왕상, 산중탱, 아미타후불탱, 불경책판 등의 20점의 지방지정 문화재, 총 30여 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 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 '해동다성진감선사추앙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쌍계사는 도의국사와 동시대에 활약한 진감선사가 육조혜능선사의 남종 돈오선을 신라에 최초로 전법한 도량이자 차의 발상지이며 해동범패의 연원이다. 그러므로 쌍계사는 선(禪), 다(茶), 음(音)의 성지로 일컬어진다.

9층 석탑을 한 바퀴 돌며 국태민안(國泰民安)과 가족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 뒤, 일행들과 함께 범종루를 지나 우선 대웅전 쪽으로 향했다. 대웅전으로 가는 도중에 명실공히 쌍계사를 대가람으로 중창하신 진감국사의 대공탑비를 둘러보면서 합장하고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손상된 곳이 많았는데 총상을 입은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까지 초파일 행사 때문인지 연등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어 대웅전 현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사찰의 본전이며, 주불단에 세 분의 목조 삼세불(아미타불, 석가불, 약사불) 좌상과 네 분의 사보살 입상을 봉안하여 모시고 있었다.

<연등 속에 묻힌 진감국사 대공탑비>
<대웅전 전경>
<대웅전 앞에서 본 연등과 앞산>
<대웅전 주불단>

대웅전에 들어가 배례를 드리고는 대웅전 앞에 펼쳐지는 전망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대웅전 왼쪽 바위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어 그곳에도 배례를 드리고는 대웅전 뒤편에 있는 금강계단으로 가서 합장을 하고 세 바퀴를 돌면서 나라가 태평하고 모든 국민들이 평안하면서 가족들의 건강과 행운도 함께 빌었다. 금강계단 뒤편 바위에는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미륵보살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삼독(탐진치)을 끊고 삼학(계정학)에 매진하기를 기도하는 듯 보였다. 따사로운 햇살이 감미롭고 화엄전 뒤편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하얀 조팝나무꽃이 더욱 화사하게 보였다. 가장 뒤편에 있는 삼성각에 들러 배례를 올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보니 모란꽃이 아름다웠다.

<마애여래좌상>
<연초록 풍경에 싸인 금강계단>
<금강계단 뒤편의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및 미륵보살>
<화엄전과 조팝나무꽃>
<제일 뒤편에 자리한 삼성각>
<아름답게 핀 모란꽃>

대웅전을 거쳐 진감국사 대공탑비를 지나 범종루로 되돌아 나와서 이번에는 금당 쪽까지 가보기로 했다. 계곡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니 낯선 미색의 꽃들이 피어 있는 나무가 나란히 서 있어 무슨 나무인지 가까이 가 보니 삼지닥나무라고 패찰이 불어 있었다. 처음 보는 나무이고 꽃이라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삼지닥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제지 원료로 심었으나 요즈음은 관상용으로 심고, 나무껍질은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하며, 한방에서는 어린 가지와 잎을 구피마(構皮麻)라는 약재로 쓰는데, 풍습으로 인한 사지마비 동통과 타박상에 효과가 있고, 신체가 허약해서 생긴 피부염에도 쓰인다고 한다. 한국(경남·경북·전남·전북)·중국·일본에 분포한다고 한다.

<처음 본 삼지닥나무와 꽃>
<삼지닥나무의 특이한 모양의 미색꽃>

이전에는 금당 영역을 개방하지 않다가 최근에 개방해서인지 그와 같은 취지의 글이 가는 길에 붙어 있었다. 청학루 왼쪽에도 삼지닥나무를 볼 수 있었다. 청학루를 돌아 들어서니 부처님의 일대기(생애) 그린 팔상도를 모신 팔상전과 봉래당이 나타났고 팔상전 오른쪽에 제법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푸른 기와를 입힌 아담한 금당을 볼 수 있었다. 금당 안에는 불교 선종의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頂上, 머리뼈)을 모신 7층 석탑이 모셔져 있었다. 마침 스님께서 아침 예불을 드리고 있어 잠깐 들어가 배례를 하고, 어렵게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초파일 연등을 하나 시주하였다. 금당에서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니 아주 오래된 배롱나무 고목에 새로운 가지가 나온 것과 활짝 핀 모란꽃이 올라갈 때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

<청학루 옆의 삼지닥나무>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그린 팔상도를 모신 팔상전>
<팔상전에 모신 석가모니 부처님>
<팔상도의 일부>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을 모신 7층 석탑이 있는 금당>
<금당 안의 7층 석탑>
<배롱나무 고목에 다시 새 가지가 자란 모습>
<그윽한 향기와 함께 곱게 핀 모란꽃>
<팔상전과 뒤편의 금당>
<받침 기둥이 거대한 청학루>

금당 영역을 둘러보면서 삼신산(三神山)이라는 지명과 봉래당(逢來堂), 서방장(西方丈), 동방장(東方丈), 청학(靑鶴樓) 등의 전각과 누각 등은 물론 쌍계석문을 접하면서 쌍명재 이인로 선생의 청학동(靑鶴洞)이라는 한시가 떠올라 여기에 올려 함께 다시 한 번 감상해본다. 수많은 골짜기와 바위들이 있는 지리산 중 어디엔가 신선들이 산다는 청학동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선 나그네의 심정을 읊은 시가 아닌가 한다. 신선들이 산다는 청학동은 화개동의 쌍계사 안쪽 지역을 지칭한 것으로 짐작한다고 하니 오늘 하루는 신선처럼 살아보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금당에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고 고요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靑鶴洞(청학동)

-청학동을 찾아서- 쌍명재(雙明齋) 이인로(李仁老)

頭流山逈暮雲(두류산형모운저) 멀리 두류산 저물녘 구름 낮게 드리우고
萬壑千岩似會(만학천암사회계) 수많은 골짜기와 바위들 회계산과 흡사하네.
策杖欲尋靑鶴(책장욕심청학동) 지팡이를 짚고서 청학동을 찾아가려 하니
隔林空聽白猿(격림공청백원제) 저편 숲속에선 부질없이 원숭이 울음소리뿐
樓臺縹緲三山(누대표묘삼산원) 누대는 가물가물 삼신산은 저 멀리 보이고
苔蘚微茫四字(태선미망사자제) 이끼 낀 바위에는 ‘쌍계석문’ 넉 자 희미하네.
試問仙源何處(시문선원하처시) 시험 삼아 묻노니 신선이 사는 곳 그 어디인가
落花流水使人(낙화류수사인미) 꽃잎 떠내려 오는 냇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네.

※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智異山)의 다른 이름이고, 회계(會稽)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 남동쪽에 있는 명산인 회계산(會稽山)을 일컬음

※ 삼신산(三神山)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세 신산(神山)으로 발해(渤海) 동쪽에 있었다는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의 세 산인데, 한국에서도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불러 이 산들을 한국의 삼신산으로 일컫는다고 함 

4월 중순이라는 시기는 산과 들에 나무에는 새순이, 땅에서는 새싹들이 돋아나 온 세상이 연초록으로 물들고 봄기운이 가장 왕성한 때라서 나들이 하기에도 아주 좋은 계절인 것 같았다. 코로나 19 사태로 2년 이상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만나지도 못하였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마음 편히 다녀올 수도 없었는데, 차츰 코로나 19 사태에서 벗어나는 분위기여서 애들 아빠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산 좋고 물 맑은 하동에서 호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명승지를 찾아 몸과 마음을 쉬는 여유는 가끔 갖는 것이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한다. 쌍계사가 처음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어 다음에 또 가고 싶어진다.

<일주문 안쪽에서 바라본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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