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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을 찾아서

복사꽃이 만발한 연곡사(燕谷寺)

by 감사화 2022.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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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여행 첫날 피아골 산책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아름다운 복사꽃(복숭아꽃)이 만발한 연곡사(燕谷寺)를 둘러보았다. 이번이 세 번째로 연곡사를 찾아온 셈이다. 첫 번째는 이번에 동행한 애들 아빠의 서울 친구 부부와 하동 나들이 때였고, 두 번째는 애들 아빠의 일본에서 함께 유학한 ETRI 동문 부부모임의 여행에서였다. 처음 왔을 때는 진달래꽃과 동백꽃이 피어 있던 지금보다 조금 이른 봄이었고, 그다음에 왔을 때는 가을이라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하여 피아골을 찾는 등반객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봄과 가을의 피아골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지리산 자락에 있는 양대 사찰인 화엄사와 쌍계사에 가려 그리 알려지지 않은 연곡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두 사찰보다 한적하지만 알찬 유적들이 많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연곡사(燕谷寺) 홈페이지(연곡사 | 마음쉬는 지리산피아골 (templestay.com))의 사찰 소개에는 연곡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고, 한국지명유래집에 나오는 연곡(燕谷 또는 鷰谷이라 하는데, 연은 둘다 제비 연임)의 의미도 함께 올린다.

<연곡사 가람 배치도 (연곡사 홈페이지 참조)>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내동리 산54-1)번지에 위치한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로 백제 성왕 22년 인도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엄계 사찰이었던 연곡사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승탑과 승탑비 및 현각선사탑비(979년 건립)등이 남아 있어 선종계 사찰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연곡사에 대한 고려시대 후기 기록으로는 목은집에 이색이 연곡사 주지인 인우스님에게 서찰과 차를 받으면서 지은 시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 전기 작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연곡사가 구례 지리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시대 학사 왕융이 지은 현각선사비문이 남아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각선사탑비의 명문을 알 수 있는 비편은 7개로, 122자, 14자, 68자, 6자, 전남대학교 박물관 시굴조사 비편 12자, 연곡사 전주지 고봉스님 습득 비편 2자,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비편 13자로 총 236자입니다.

조선시대 연곡사는 1598년 4월 10일에 왜적이 사찰에 들어와 살육을 자행하고 불을 질러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5년(1627)에 소요대사 태능(1562~1649)이 중건하였습니다. 조선후기(1745년) 연곡사를 율목주재봉산으로 삼아 연곡사 주지가 도제조가 되었습니다. 정조 3년(1779년) 동파당 정심선사가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현각선사비는 임진왜란 이후 문자의 획이 박락되다가 19세기 후반에 마침내 깨어졌습니다.

구한말(1895년) 율목주재봉산이었던 연곡사는 밤나무 남용으로 사세가 기울어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절이 폐망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1907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습니다.

이후 1924년 박승봉이 연곡사 경내에 심우암을 창건하고 쌍계사 손범성 스님이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당시 피아골 전투로 다시 소실되었습니다. 1965년 대웅전과 요사채를 겸한 전각을 건립했으며, 1981년에 종인스님이 대웅전을 헐고 대신 그 자리에 정면5칸, 측면 3칸 규모의 대적광전을 신축했습니다."

"연곡(燕谷)이라는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구례)에 "연곡사(鷰谷寺)는 지리산에 있다. (중략) 연곡교(鷰谷橋)는 동쪽으로 3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었으며 『여지도서』에도 "연곡사는 관아 동쪽 50리 지리산 아래에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동여비고』(전라도)에 연곡사가 지리산에 기재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하천이 묘사되어 골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연곡 지명은 『구례군사』에서 "동곡(洞谷)의 산형(山形)이 연소(鷰巢, 제비집)와 같다 하여 이름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연곡사 전설 중 연곡 지명의 유래가 전하는데 연기조사(烟起祖師)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큰 연못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연곡'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왼쪽에 곱게 핀 복사꽃이 반기는 가운데 智異山燕谷寺(지리산연곡사)라고 적힌 웅장하게 서있는 일주문을 들어서니 여유롭게 멀찍이 떨어져 천왕문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타났다. 천왕문을 들어서 사천왕들께 배례를 하고 나오자 이번에는 화사하게 핀 벚꽃이 양쪽에 나란히 서서 맞아주었고, 삼홍루가 보였다. 삼홍루를 돌아가자 초파일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대적광전(大寂光展)이란 편액이 가릴 정도로 가지각색의 연등이 걸려 있는 풍경이 눈앞에 들어왔다. 대적광전은 연화장 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봉안하는 불교건축물로,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本殿)으로 건립하여 화엄경의 연화장 세계가 대정적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大寂光展)이라 부른다고 한다. 

불교사전에 보면 연화장(蓮華藏) 세계란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비로자나불()의 정토. 이 부처는 천 개의 잎을 가진 연화좌()에 앉아 있는데, 그 잎 낱낱은 낱낱의 세계를 상징하며, 그 낱낱의 세계에 100억 국토가 있고 그 국토에 보신불(報身佛)이 출현한다고 함"라고 되어 있다.

<복사꽃이 만발한 연곡사 일주문>
<일주문 옆에 화사하게 피어난 복사꽃>
<여유롭게 자리잡고 있는 천왕문>
<아름답게 핀 벚꽃>
<연곡사 천왕문 오른쪽에 있는 피아골순국위령비>
<대적광전과 연등>
<연곡사 경내 안내도>

대적광전(大寂光展)에는 원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여 연화장 세계를 상징하게 된다고 한다. 원래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로는 비로자나불·아미타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선종()의 삼신설에 따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의 삼신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의 좌우 협시보살()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한다고 하는데, 연곡사의 대적광전(大寂光展)도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대적광전(大寂光展)에 들러 배례를 올리고는 대적광전(大寂光展) 앞에 서서 전망을 보니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일면서 마치 한 마리의 용이 재주를 부리는 것 같았다. 일행들이 대적광전(大寂光展) 뒤편에 있는 동승탑(동부도)과 동승탑비(동부도비)를 관람하러 가고 있어 그쪽으로 향했다. 돌계단을 천천히 오르면서 새순과 새싹 그리고 봄꽃들이 펼치는 힘찬 기운이 넘치는 풍경을 감상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애들 아빠의 서울 친구분이 갑자기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20여 분 쉬고 있으면 다시 괜찮아진다고 하여 모두 염려를 했다. 살아가면서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한데,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 상태가 좋지 않은 부위들이 생겨 늘 불안하고 걱정이다.

<대적광전에 봉안된 비로자나불과 협지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대적광전 앞에서 바라본 전경>

동승탑(국보 제53호)은 전체 높이가 3.5m이고, 지대석 폭이 1.75m 내외로 연곡사에 있는 3기(동승탑, 북승탑, 소요대사탑)의 승탑 중 가장 정교하다고 한다. 양식적으로는 팔각원장을 기본으로 방형의 지대석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를 쌓은 일반형이며, 지대석과 하대석은 한 개의 석재로, 하대석은 이단으로 팔각형이며, 하대석 윗부분은 중대석 받침이라고 한다. 탑신의 각면에는 문비사천왕상이 낮게 돋을새김 되어 있고, 상륜부는 앙화 위에 네 방향으로 날개를 편 채로 서있는 새를 조각하고 그 위에 다시 연꽃 문양의 보륜을 얹었으며, 연곡사에 현재 남아 있는 승탑 가운데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통일신라 말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어느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인지는 알 수 없고,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부도 중 화순 쌍봉사의 철감선사 부도와 함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동승탑 바로 옆에 위치한 동승탑비(보물 제153호)는 전체 높이가 1.9m이고, 지대석은 가로 1.56m, 세로 1.74m로, 현재 비신은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는 지대석과 한돌로 네다리를 사방으로 뻗고 있어 마치 납작하게 엎드린 모습을 연상시킨다. 오른쪽 앞발을 살짝 든 귀부의 정상에는 장방형의 비좌를 마련하고 있는데 비좌의 네 측면에는 구름무늬를 고부조로 장식하였으며, 그 윗면 주위로 복판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머리는 떨어져 나간 것을 다시 붙여 놓았다. 거북의 등문양은 앞쪽으로는 파상곡선으로 이루어진 새 깃 모양의 조익형 무늬이고 뒤쪽으로는 육각의 갑문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동승탑과의 연관성은 고증할 길이 없고, 규모도 아담해지고 양식적인 측면에서도 통일신라시대와는 다른 여러 가지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동승탑>
<동승탑비>
<동승탑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대적광전과 삼홍루>

북승탑까지는 가보지를 못하고 다시 대적광전(大寂光展) 쪽으로 내려와 소요대사탑과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쪽으로 가서 배례를 하면서 그분들의 뜻을 기렸다. 북승탑은 동승탑에서 북쪽으로 약 150m 올라가면 북승탑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구조, 형태, 크기, 조각에 담긴 내용 등이 동승탑과 거의 같다고 한다. 북승탑은 비록 동승탑의 양식을 모방하긴 했으나 나름대로의 멋이 뚜렷하여 우위를 가리기 어렵다고 한다. 소요대사탑(보물 154호, 서부도라고도 함)은 연곡사 서북쪽에 위치하고 높이는 3.08m이고, 지대석 너비는 0.7m이며, 평면 팔각원당의 기본형으로 지대석은 팔각으로 잘 다듬었으며, 윗면에는 얕은 턱이 하대석을 받치고 있다. 동승탑은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 그 문하의 4대파 가운데 한 파를 이룰 만큼 유명했고,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연곡사를 크게 중창한 소요대사 태능 스님의 부도라고 한다.

<소요대사탑>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연곡사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애들 아빠의 서울 친구가 들어오면서 한 나무에 두 종류의 꽃이 피어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일행들이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기에 모두 그쪽으로 가보았는데, 정말 희한하게도 반쪽은 붉은 복사꽃이 그리고 다른 반쪽은 하얀 옥매화가 대비되게 피어 있어 돋보였다. 일행들 모두가 그런 자태의 나무를 보고 탄성을 지르면서 정말 신기한 꽃나무라고 입을 모았다. 일행 중 한 명이 그 사연을 문의하고 와서는 처음에 돌복숭아나무에 두 종류의 나무를 접붙였는데 옥매만 성공이 되고 나머지 한 종류는 실패하여 지금과 같이 두 종류의 꽃이 한 나무에서 피고 있다고 했다고 하였다. 연곡사에 세 번째로 와서 복사꽃과 옥매화가 피어 있기에 한 나무에 두 종류의 꽃이 핀 것을 알게 되었다. 4월 중순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연곡사 나들이는 이 꽃나무 하나로 멋지게 마무리가 되었다.

<멀리 낮에 나온 반달을 배경으로 한 한 그루 두 종류의 꽃이 핀 신기한 나무>
<소요당에 있는 돌복숭아꽃과 옥매화가 함께 핀 나무>
<반대쪽에서 본 한 그루에 두 종류의 꽃이 핀 나무>
<연곡사를 나오면서 본 채전밭과 봄풍경>

참고로 연곡사 홈페이지의 보도자료에 CNN에서 2020년 1월 10일 보도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33 사찰"에도 연곡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자료가 있어 CNN의 링크만 올린다. 시간을 내서라도 이들 33 사찰을 둘러볼까 한다.

33 of South Korea's most beautiful temples | CNN Travel

 

33 of South Korea's most beautiful temples

South Korea has about 900 traditional Buddhist temples. But how to choose among so many? CNN Travel narrows the list of South Korea's most beautiful temples down to 33.

www.c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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