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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을 찾아서

하동 나들이를 마감하며 찾은 사성암(四聖庵)

by 감사화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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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하동 나들이의 마지막 날 오전에는 구례에 있는 사성암(四聖庵)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 하동 나들이 계획에는 사성암이 들어있지 않았는데, 애들 아빠 서울 친구가 절벽 위에 있는 유명한 암자(庵子)라고 하여 일행 모두가 함께 가기로 하여 들리게 된 것이다. 사성암은 초행이라서 쌍계사 부근의 숙박지에서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해보니 20여 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짐을 챙겨 출발했다. 전날 저녁에는 바비큐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책까지 한 뒤 분위기 좋은 야외 벤치에 앉아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매화차와 냉이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는데, 2박 3일이라는 시간이 삽시간에 지나간 것 같았다.

섬진강을 두고 오른쪽은 하동이고 왼쪽은 구례였고, 사성암까지 가는 구례 쪽 도로 양쪽에는 하동 못지않게 많은 벚나무들이 줄을 지어 맞아주었다. 벚꽃이 필 때라면 하동과 구례를 이어 드라이브를 하면 아주 멋질 것 같았다. 사성암은 들었던 대로 해발 531m인 오산(鰲山) 정상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오르기 위해서는 첫째 직접 자가용을 타고 가는 방법, 둘째 오산 아래에 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왕복 대인 1인 당 3,400원/편도 1,700원, 소인 1인 2,800원/편도 1,400원), 셋째 택시를 타고 가는 방법(왕복 1인 12,000원, 편도 7,000원)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우리 일행은 6명이라서 두 대의 자가용을 타고 오르기로 했다.

셔틀버스 주차장에서 사성암까지의 거리는 약 3.6km로 약 6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처음에는 완만한 오르막길이었지만, 사성암이 가까워질수록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사성암 내의 주차장에는 이미 10대 이상의 자가용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얼핏 봐서 약 20대 정도까지는 주차가 가능할 것 같았다. 셔틀버스 매표소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사성암 주차장이 만원이 되면 자가용을 타고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오산 정상 부근이라서 주차장도 평지가 아니라 왼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형태였고, 해우소(화장실)도 물을 아껴 쓰도록 안내가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완만한 비탈길을 따로 올라가니 사성암 종합안내도가 있어 사성암의 암자 배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성암 종합안내도와 암자 배치>

사성암 종합안내도에는 "구례 오산은 경관이 빼어나 「봉성지」(구례 향교 발간, 1800년)에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성암은 오산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암벽을 활용하여 지은 사찰인데, 서기 544년에 연기조사가 세웠다. 원래는 오산사라고 부르다가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4명의 고승이 수도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암자 주변에는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있는데, 그중에 풍월대, 신선대, 소원바위 등 12 비경이 빼어나 명승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오산 사성암은 섬진강과 주변 평야, 구례읍과 7개 면(面)과 지리산 연봉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며, 오산 정상 풍경과 사찰 건물, 그리고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사성암은 전남 구례군 문척면 사성암길 303(죽마리 189번지)에 위치한 화엄사 말사라고 한다. 두산백과에 보면 사성암"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8월 28일 명승 제11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구례읍에서 약 2km 남쪽인 죽마리 오산(鰲山)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544년(성왕 22년)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성암 사적(四聖庵史蹟)》에 4명의 고승, 즉 원효(元曉)·도선국사(道詵國師)·진각(眞覺)·의상(義湘)이 수도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오산은 해발 531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경승지이다. 《봉성지(鳳城誌)》에 이르기를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 하였다. 암자 뒤편으로 돌아서면 우뚝 솟은 절벽이 전개되는데, 풍월대·망풍대·신선대 등 12 비경으로 절경이 뛰어나다.

또한 송광사 제6세인 원감국사(圓鑑國師) 문집에도 오산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오산 정상에서 참선을 행하기에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진각 양 국사가 연좌수도(宴坐修道)했던 곳”이라 하였다. 어쨌든 이와 같은 기록들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이래 고려까지 고승들의 참선을 위한 수도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찰은 조그마한 소규모의 목조 기와집이며, 암자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 되는 음각 마애여래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마애여래입상의 연대가 고려 초기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사성암의 창건 내력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라고 되어 있다.

종합안내도를 보고 사성암 내에 있는 전체 전각 배치도를 숙지한 뒤에 약 200m 정도의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서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바위에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은 어디에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을 달래며 전방과 산아래 풍경을 함께 즐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석가탄신일이 가까워서인지 아니면 일 년 내내 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약사전(유리광전)으로 오르는 길 한쪽에 연등이 아름답게 매달려 있었고, 산 아래로 펼쳐지는 봄의 산과 들의 풍경이 아름답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미 벚꽃은 갔지만 산벚꽃과 왕벚꽃 그리고 진달래꽃이 피어 있고, 나뭇가지에는 새순들이 돋아나 꿈과 희망을 전하면서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종합안내도를 지나 오르는 길 한쪽에 늘어선 연등>
<잔뜩 흐린 날씨에 솔개(?)가 날고 있는 모퉁이를 돌아 약사전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의 봄풍경>
<산 아래로 펼쳐진 봄기운이 완연한 산과 들>
<새순이 돋아나고 있는 정상쪽의 풍경>
<멀리 절벽 아래에 세워져 있는 약사전(유리광전)>
<멀리서 바라본 53불전과 귀목나무>
<가까이서 바라본 약사전(유리광전)과 12지신상>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 안내판>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나들이 하기에는 아주 좋은 때를 잡아 건강하게 다닐 수 있어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다. 차츰 약사전(유리광전)으로 다가갈수록 멀리서나마 53불전도 보이고 새순이 파릇파릇한 귀목나무(어린잎은 식용으로, 나무는 건축재, 가구재, 선박용으로 사용하는 한국, 시베리아, 일본 등지에 분포하는 낙엽 활엽 교목인데, 느티나무의 다름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종합안내도에서와 거의 비슷한 설명의 사성암 일원 안내도를 뒤로 하고, 바로 옆에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께 합장을 한 뒤에 약사전(유리광전)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약사전(유리광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한 보살님이 빗자루로 쓸며 참배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종무소 앞쪽 바위에 새겨진 불상>

 

<종무소 쪽에서 바라본 한쪽 기둥만으로 세워진 약사전(유리광전)>
<종무소 앞에서 올려다 본 53불전(나한전)>
<약사전에 오르기 전에 올려다 본 약사전(유리광전)>
<약사전을 올라가는 돌계단을 따로 매단 연등>
<12지신상과 산 아래 전경>
<약사전으로 오르는 돌계단>

드디어 절벽에 지어진 약사전(유리광전)에 들어섰는데, 정면 유리창 너머로 마치 붓으로 그린 듯 정교하게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이 또렷하게 보였다. 귀하게 온 사성암이라서 애들 아빠와 함께 108배를 올리며 우리나라가 평안하고 국민들이 행복하기를 또한 우리 가족 모두와 오늘 함께 한 일행들 모두와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108배를 올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약사전(유리광전)을 나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금 전에 봤던 경치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약사전(유리광전) 앞에서 본 나한전(53불전)은 특이한 형태로 절벽에 세워진 것 같았다. 약사전(유리광전)을 돌아 나와 일행들과 함께 종무소를 거쳐 최근 신축되었다는 육화당과 산왕전 쪽으로 향했다.

<바위에 정교하게 새겨진 높이 4m라는 마애여래입상>
<약사전 내부의 불단>
<확대시켜 본 마애여래입상>
<약사전 앞에서 내려다 본 산과 들 그리고 섬진강>
<약사전에서 바라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나한전(53불전)>
<종무소를 지나 소원바위와 도선굴로 향하는 돌계단>

육화당을 지나니 아름드리 귀목나무가 연초록 새순을 내며 싱그럽게 서 있었고, 조금 더 올라가니 나한전(53불전)으로 들어가는 길과 도선굴로 향하는 길이 나뉘어 우선 도선굴 쪽으로 향했다. 20m도 가기 전에 다시 지장전으로 가는 길이 있었지만 곧바로 소원바위와 도선굴 및 산왕전으로 올라갔다. 소원바위는 부처님 형상을 닮은 바위들이 서 있어 이곳은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고 하여 소원바위로 불린다고 했다. 또한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으로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사연이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소원바위 앞에서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한 가지 소원만 지극하게 빌었다.

<육화당 맞은 편 절벽에 자라난 아름드리 귀목나무>
<나한전(53불전)으로 향하는 길>
<나한전(53불전) 안내판>
<소원바위, 지장전, 도선굴로 향하는 돌계단>
<절대 올라가면 안 된다는 바위>
<지장전으로 향하는 길>
<소원바위 안내판과 산왕전과 도선굴 이정표>
<절벽에 곱게 피어 있는 진달래꽃>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는 소원바위>
<소원을 빌었던 소원바위>

이어서 산왕전 쪽으로 들어가서 산왕전 앞에서 배례를 올린 뒤에,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도선굴로 들어가니 촛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도선굴을 겨우 빠져나가니 10m 정도 앞쪽에 오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놓여 있었다. 좀 전에 둘러보았던 약사암이 있는 쪽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 풍경과 반대편인 도선굴을 나선 곳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전경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 바로 직전에 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관망도가 있어 오산과 지리산 사이에 있는 지세를 비교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정상까지 올라가 보기로 하고 계단을 오르는데 제법 가팔랐다. 계단을 올라 조금 더 올라가니 산 능선이 나타났고 여기저기 진달래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맞아주었다.

<거대한 바위 사이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산왕전>
<도선굴로 들어가는 입구>
<도선굴 안을 훤히 밝히고 있는 기도 촛불>
<도선굴 입구에 들어가 출구로 나아가는 길>
<도선굴을 빠져나가 진달래꽃이 곱게 핀 가운데 내려다 보이는 섬진강과 지리산>
<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관망도>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은 계단>
<계단을 올라서니 바위 위에 쌓은 돌탑들>
<연초록 새순과 아름답게 핀 진달래꽃 꽃밭>
<오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곱게 핀 진달래꽃>

정상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계속 걸어가 보았는데, 이내 정상 표지석이 나타났고, 해발 530.8m(약 531m)라고 적혀 있었다. 정상 표지석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의외로 정자가 보여 정자에 올라가 보니 오산의 사방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섬진강이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구례읍과 멀리 어슴프레 보이는 지리산 그리고 가까운 산아래 여기저기 희끗희끗 피어 있는 산벚꽃과 연초록 새순들, 4월 중순을 지나가는 봄을 오산 정상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이번 하동 나들이의 마무리를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곳에서 할 수 있어 정말 사성암에 잘 왔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정자 위에서 생수로 목을 축이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반추해 보았다.

<오산 정상 표지석(해발 530.8m)>
<표지석 옆 소나무 아래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진달래꽃>
<정상 표지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정자(전망대)>
<정자에서 바라본 산능선 아래 풍경>
<진달래꽃과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
<멀리 섬진강과 구례읍이 보이는 전경>
<남해로 흘러가는 섬진강 물줄기와 들판 및 산세>
<정상 표지석 쪽의 능선 풍경>
<구름이 잔뜩 낀 첩첩산중>

오산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은 곳까지 올랐으니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게 되었다. 항상 등산을 할 때 유의할 점이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를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체중이 하체에 몰리기 때문에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조심조심 하산을 시작했다. 오를 때 보지 못했던 경치를 내려갈 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눈은 산 아래에 펼쳐지는 풍경들 쪽으로 향하기가 바빴다. 내려오는 길에 올라갈 때 보았던 똑같은 진달래꽃도 다르게 보였고, 산 아래 풍경도 새로웠다. 정상으로 오르던 계단을 내려와 도선굴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내려오는 길로 들어서니 배례석이 나타났다. 배례석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합장하고 예를 올리는 곳이라고 했다.

<정자쪽으로 갈 때 보았던 아름다운 진달래꽃>
<약사전이나 나한전 위쪽으로 여겨지는 바위(?)>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새순과 산벚꽃>
<불자들이 부처님께 합장하여 예를 갖춘다는 배례석>
<소원바위 쪽에서 바라본 배례석>

배례석에서 두 손을 모르고 부처님께 합장하고 예를 올렸다. 도선굴과 산왕전 및 오산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들리지 않았던 지장전과 나한전(53불전)에 들러 배례를 올렸다. 사성암은 지형상 다른 사찰이나 암자와는 달리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있어야 할 전각들이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사성암의 구석구석은 물론 오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번 하동 나들이는 특별히 스케줄을 잡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서로 의논을 하여 움직여서 전혀 일정에 쫓기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자연을 즐기고 서로 간의 정을 나눌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크게 쉰다는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내려오면서 다시 본 소원바위>
<지장전의 옆모습>
<지장전 안내판>
<지장전 편액과 지장보살상>
<지장전 뒷쪽을 통해 도선굴과 산왕전으로 이르는 길>
<지장전 앞에서 바라본 나한전(53불전)>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난 귀목나무>
<절벽에 자라나 꽃을 피운 이름 모를 꽃>
<나한전 쪽에서 바라본 지장전>
<나한전(53불전)의 불단>
<나한전 앞에서 바라본 산 아래 전경>
<아름드리 귀목나무와 연등>
<귀목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산 아래 봄 풍경>
<육화당 쪽에서 바라본 약사전의 봄 풍경>
<종무소 쪽으로 조금 더 내려와 바라본 약사전>
<외나무 다리로 절벽에 버티며 세워진 나한전과 약사전>
<절묘하게 세워진 약사전>
<종무소 앞에서 바라본 약사전(유리광전)>
<종무소 앞에서 바라본 53불전>

<하동 나들이 2박 3일을 무사히 함께 마무리했던 일행들과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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