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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풀 그리고 차/꽃과 풀

2023년에도 만난 자장매(慈藏梅)

by 감사화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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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례 행사처럼 자장매가 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갔던 양산 통도사였는데, 올해는 이런저런 일로 자장매를 보러 간다는 것이 차일피일 미루어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 켠에 늘 허전함이 있었다. 그런데 애들 아빠가 통도사에 계신 스님과 잡아함경 번역을 함께 하고 있는데, 지난 주에 그 스님께서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고 하면서 언제 다녀올까 하는 말을 듣고 잘 됐다 싶어 오늘 정오쯤 애들 아빠를 앞세워 통도사로 향했다. 명분은 올해 집안에 해결해야 될 일이 많아 예수재(豫修齋,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재를 올려 죽은 후에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를 올리려고 하는데, 큰 사찰이 아니면 예수재를 거행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조금 늦었지만 자장매와 홍매 등이 피어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를 했다. 완연한 봄날이라서 나들이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통도사에 도착해서는 애들 아빠는 스님을 뵈러 가고 나는 예수재 접수를 한 뒤, 관세음전과 대웅전, 극락전과 비로전, 산령각과 삼성각 등에 들러 배례를 드리고 나서 서로 연락하기로 했다. 예수재 접수하는 곳으로 가면서 눈은 힐끗힐끗 자장매와 홍매 있는 쪽으로 가꾸 가고 있었다. 우선 다음 월요일부터 입재한다는 예수재 접수부터 하고 나서 자장매와 홍매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둘째가 대기업 연구소에 들어가더니 복지 카드를 주면서 병원이나 쓸 곳이 있으면 마음대로 사용해라고 했는데 혹시 카드 결재가 되는지 접수처에 문의하니 현금만 된다고 해서 접수만 하고 집에 가서 적어준 계좌로 입금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장매를 만나러 영각(影閣)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소문에 2월 초부터 자장매가 피었다고 해서 이미 자장매가 다 지고 없는 줄 알았는데, 조금 시들기는 시작했지만 아직 아주 곱게 피어 있었다.

그래도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배례부터 올리고 자장매를 감상하기로 했다. 서둘러 전각들을 둘러본 뒤 자장매를 만나러 갔다. 평일 오후라서 자장매 주위에는 자장매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그리 많지 않아 자장매 감상하기에 아주 좋았다. 자장매의 특징은 연분홍 꽃잎이 보기만 해도 물들 것 같은 화사함과 꽃술이 다른 매화들보다 길고 견실하게 자리잡고 있어 힘차 보인다는 점이다. 자장매를 밑에서 위로 쳐다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코끝에 향기를 담아보다가 옆으로 돌려보고 똑바로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아마 내가 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자세히 관찰했다면 분명 자장매에 홀린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얼굴이 화끈하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나이값을 하기는 하는 것인가 하면서 최근 어디서 일흔까지가 청년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나서 이 정도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영각(影閣) 앞에 홀로 아름다운 자장매를 피우고 있는 자장매화나무>
<화사하게 피어난 자장매>
<조금 늦은감은 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자장매>
<가지마다 아름다운 꽃과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는 자장매화나무>
<지고, 피고,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자장매>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자장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장매>
<흐드러지게 핀 자장매>
<어느 방향으로 봐도 곱기만 한 자장매>
<바라보면 몸과 마음까지 분홍빛으로 물들 것 같은 자장매>
<말로 아름답니 곱니 예쁘니가 근접할 수 없는 자장매>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자장매>
<이렇게 곱게 단장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는 자장매>
<초점이 맞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장매>
<길쭉한 꽃술까지 싱그러운 자장매>
<다음 달에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것 같은 자장매>
<또 찾아올 수 밖에 없을 아름다운 자장매>

자장매와 한참을 함께 보낸 뒤에 비로전으로 향하는 곳에 있던 홍매와 극락전 왼편에 있는 분홍매와 홍매도 감상을 했다. 자장매의 색깔이 연분홍이라면, 분홍매는 자장매보다 약간 흰색이 더 돋보이는 것 같고, 홍매는 말 그대로 붉은색에 가까워 분홍매나 자장매보다 훨씬 정렬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자장매보다 홍매가 더 인기가 있어 관람객들이 홍매쪽에 더 많이 모여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가 하면 전문 사진기사들도 여럿 작품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애들 아빠 생각이 나서 연락했더니 20여 분 뒤에 스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와서는 자장매와 홍매 및 분홍매를 올해도 빠뜨리지 않고 감상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전혀 사진 모델이 될 것이라는 어림도 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아름다운 홍매를 보니 마음이 동해 매화를 배경으로 몇 장 추억을 담아왔다.

<비로전 가는 길목에 있는 불타는 듯한 홍매>
<색다른 멋을 보이고 있는 홍매>
<강렬한 인상을 주는 홍매>
<극락전 왼편에 화사하게 핀 분홍매>
<마치 벚꽃 같기도 한 분홍매>
<굵은 몸통에서 피어난 분홍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분홍매>
<활짝 피어나 봄을 즐기고 있는 홍매>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더욱 고운 홍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들뜨는 홍매>
<오후의 봄햇살을 맞으며 아름답게 핀 홍매>
<꽃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홍매의 자태>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홍매>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고운 홍매>
<뒤돌아보면 떠나지 못할 것 같은 분홍매와 홍매>

자장매와 홍매 그리고 분홍매를 보니 오래 전에 암송했던 월암 이광려 선생의 한시(漢詩) 한 수가 생각이 나서 여기에 옮겨 함께 감상해 보기로 한다.

(梅)

-매화-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

滿戶影交脩竹枝
(만호영교수죽지) 대나무 그림자 길게 드리워 방문에 가득 차고

夜分南閣月生時(야분남각월생시) 밤은 깊어 남쪽 사랑에 달이 떠올랐을 때
此身定與香全化(차신정여향전화) 이 몸 정녕 그 향기에 흠씬 물이 들었는지
嗅逼梅花寂不知(후핍매화적부지) 매화에 다가가 향기 맡아도 알지를 못하겠구나.

매화가 한창인 때이다.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고혹적인 매화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그윽한 향기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통도사 영각 앞에 있는 홍매인 연분홍빛 자장매의 아름다운 자태도 보았다. 매실밭의 매화 역시 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히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 쪼이고 있다. 봄이 왔음을 직감할 수 있는데 꽃샘 추위의 기승도 만만찮은 것 같다. 그래도 봄을 몰고 온 매화의 기세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런 나날이라고 해도 모두 지나가는 과정이다. 곧 따사로운 봄바람에 칼바람도 사라지듯 시련의 날도 가고 행복한 날을 맞을 것이다.

 
밤이 깊어 방문에 대나무 가지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달까지 휘영청 떠오른 때에 바깥으로 나가 피어 있는 매화를 보고 향기를 맡으려고 코를 가까이 대보았지만 향기가 나지 않는다. 그 연유는 이미 자신의 몸까지 매화 향기로 흠뻑 물들어 있어서라는 표현을 이렇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코만 갖다대면 바로 찌르는 매화 향기를 맡을 수가 없겠는가? 그렇지만 이미 매화 향기가 집안 구석구석까지 가득 차고 배어, 자기 몸마저 매화 향기로 완전히 물이 들었기 때문에 코를 바짝 매화에 갖다대어 보았지만 전혀 그 향기를 알 수가 없다고 했을까?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다.

이광려(李匡呂, 1720년 ~ 1783년)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실학자로, 자는 성재(聖載)이고, 호는 월암(月巖), 칠탄(七灘)이며, 본관은 전주라고 한다. 시기적으로는 숙종과 정조 때 인물로 참봉이 된 뒤로 벼슬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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